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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잘못 넣어 환자 사망…전공의 유죄, 교수는 혐의 벗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폐색이 있는 고령 환자에게 다량의 장정결제(대장 내시경 검사 전 장을 깨끗이 비우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를 투여해 숨지게 한 혐의로 대학병원 전문의(교수)와 전공의가 함께 재판에 넘겨졌지만, 대법원은 전공의의 책임만 인정했다. 교수와 전문의 간 업무가 나뉘어 있는 경우 그 책임은 나눠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의사의 책임. [일러스트=김지윤]

의사의 책임. [일러스트=김지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일 교수 A씨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해 환송하고, 전공의 B씨에 대한 유죄 판결은 확정했다.

대법원은 "전문의와 전공의 등의 관계처럼 수직적 분업의 경우에는 주된 의사가 다른 의사의 의료행위 내용이 적절한지 확인하고 감독할 주의의무가 있다"면서도 전문의의 책임을 묻기 전에 살펴야 할 기준을 제시했다. "위임받은 의사의 자격이나 평소 수행한 업무, 위임의 경위 등을 비춰봤을 때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위임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뇌경색 등을 이유로 강남 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80대 남성 C씨는 신경과 진료를 받던 중 장폐색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주치의로 지정된 소화기내과 교수 A씨와 전공의 B씨는 대장암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장 내시경 검사를 결정했고, 전공의 B씨는 장정결제 4ℓ를 이틀에 나눠 투여하도록 처방했다. 검사 전날 저녁 2ℓ의 장정결제를 투여받은 C씨에게는 장천공과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고,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다음날 숨졌다. 장폐색이 있는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하면 장내 분변 등이 제대로 내려가지 못해 압력이 증가하고 장의 막이 얇아져 천공이나 하혈이 발생할 수 있다.

1심 재판부가 받은 감정의 소견에 따르면, 장폐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장정결제를 1ℓ 정도 소량씩 투여하고 부작용 유무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전공의 B씨는 수사과정에서 "검사 전날 저녁 1ℓ, 검사 당일 아침 1ℓ를 투여하도록 처방해야 했지만 착오로 총 4ℓ 투여 처방이 내려졌다"고 진술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두 사람은 공동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난 2018년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장정결제 투여를 결정한 점 ▶장정결제를 투여하는 이유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 ▶장정결제 양을 줄이지 않고 부작용을 대비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교수 A씨의 책임을 더 무겁게 물었다. 지난 2020년 1심 재판부는 모든 혐의를 인정해 두 사람에게 금고 10개월형을 선고하면서, 전공의 B씨에게는 2년의 집행유예 기간을 줬다. 지난 1월 2심 재판부는 교수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 전공의 B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장정결제 투여를 결정한 사실 자체로는 두 사람에게 잘못을 물을 수 없다고 보고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1·2심 재판부가 교수와 전공의의 업무 분담 관계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대장 내시경을 결정한 교수 A씨의 진단에는 문제가 없고 전공의 B씨가 위임받은 장정결제 업무에서 부작용이 생겼으니, 둘의 책임을 나눠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전공의는 수련을 받는 지위에 있기도 하지만, 의사면허를 받은 전문 의료인으로 처방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앞선 판례에서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각자의 의료영역을 나누어 환자 진료의 일부를 분담하였다면, 진료를 분담받은 다른 의사의 전적인 과실로 환자에게 발생한 결과에 대하여는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데, 교수와 전공의의 관계에도 이 법리가 일부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정결제 절차는 고도의 의학적 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한 의료행위가 아니어서 충분히 전공의에게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점, 전공의 B씨가 당시 내과 2년 차로 충분한 경력을 쌓아온 점 등이 고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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