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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바이든은 왜 시진핑에 먼저 만나자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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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자유 낙하하던 미·중 갈등이 ‘잠시 멈춤’ (pause) 버튼을 눌렀다. 지난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대면 정상회담을 통해서다.

제시카 천 웨이스 (Jessica Chen Weiss) 코넬대 교수는 11월 16일 하버드대 세미나에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의는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그는 웃지 않고 이 발언을 했다.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웨이스 교수의 진단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가 최근까지 미 국무부 중국 고문을 1년 동안 담당하다 막 학계로 복귀해 미국 정부 내부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골이 그렇게 깊게 파인 것이다.

투명인간 된 미·중 대사

왕이(王毅) 중국 정치국위원 겸 외교부장은 11월 15일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 언론 브리핑 및 질의응답’에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미국이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미국은 사이가 급속도로 틀어진 중국에 왜 굳이 먼저 대좌를 제안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미국의 동기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바이든은 시진핑과 서로의 ‘의도와 우선순위’ (intentions and our priorities)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미국이 특히 중점을 두었던 사항은 아래와 같이 파악된다.

첫째,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유례없이 커진 가운데 미국 정부 내에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부처별 판단에 서로 차이가 존재했다. 그 이유는 양국 모두 소통 채널을 거의 다 막아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소통이 막히면 정보도 막힌다.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를 미국의 정부 인사들이 만나 주지 않으며 ‘투명 인간’ 취급하고 있었고, 중국은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를 ‘식물 대사’로 만들었다.

당연히 중국공산당 고위 인사와 접촉도 드물었다. 코로나 방역을 구실로 중국 학자들에게도 미국 대사관과 접촉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코로나 기간 대세가 됐던 Zoom 화상회의도 막혔다. 그러니 미국 외교관들의 중국 현지 정보 수집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정부와 싱크탱크 내 분석관들이 중국을 방문하지 않고 쓰는 중국 보고서가 늘었다. 지난 코로나 정국 3년 동안 그것이 누적되면서 보고서의 정확도와 신뢰성에 당연히 의문이 제기됐다. 많은 대만 위기 보고서도 언론 보도를 기초로 쓰는 형국이었다. 그러자 워싱턴에서 나오는 중국 관련 보고서는 ‘분석’이 아니라 ‘장거리 상상’ (long-distance imagination)이란 조소가 나올 정도였다.

‘잠시 멈춤’ 버튼 누른 미·중 갈등

그러한 보고서 중에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에 관해 쓴 ‘무시무시한 보고서’ (scary report)도 꽤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지난 8월 2일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화가 난 중국이 미·중 군사 핫라인마저 끊어버리자, 미국 정부 내에서는 대만을 둘러싼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소위 ‘이러다 전쟁 난다’라는 우려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상황이었다.

거기에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번스 국장이 지난 10월 3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을 지시했다’는 폭탄 발언을 한 후 일부 학자들이 이를 반박하면서 전문가 커뮤니티 내에서도 혼란이 일었다. 결국 중국에서 최고 결정권을 가진 인물로부터 이를 직접 확인하는 기회를 갖는 게 미국 입장에선 매우 중요해졌다. 대만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한 시진핑의 생각을 당사자로부터 직접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정보는 없을 테니 말이다.

시진핑과 회담 후 바이든이 “나는 중국이 대만을 침략하려는 임박한 시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I do not think there’s any imminent attempt on the part of China to invade Taiwan)'라고 했고, 이를 많은 미국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뽑은 것은 이 문제에 관해 미국 조야(朝野)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시사한다.

둘째는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위협한 푸틴의 행동을 막기 위해 시진핑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에서 의외로 간과된 부분이다. 백악관 누리집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핵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며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합의를 그들이 재확인했고” (reiterated their agreement) 우크라이나에서의 핵무기 사용 또는 사용 위협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강조했다” (underscored their opposition)라고 적혀 있다. 바이든뿐만이 아니라 시진핑도 동의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their)이라고 구체적으로 두 번이나 명시했다.

대만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심

관련 대목은 중국 외교부 측이 소개한 미·중 정상회담 내용엔 통째로 누락돼 있다. 단지 양국 원수가 ‘우크라이나 위기’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에둘러 표현돼 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이 후에 내놓은 부연 설명에서는 “시 주석이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고, 핵전쟁은 할 수 없다" (核武器用不得、核戰爭打不得)고 말했다며 발언의 주체가 시진핑 주석임을 확실히 밝혔다.

러시아와 “한계 없는 협력”을 다짐하며 밀착관계에 있는 시진핑의 입에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반대 발언을 얻어낸 것을 미국 측은 큰 성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북한의 핵 실험 가능성과 최근 연이은 북한 미사일 실험과 관련해서 시진핑으로부터 확고한 반대 의사 표명을 바이든이 받아내지 못한 점은 한국에는 매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볼 때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미·중 관계의 구조적 갈등 체계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잠시 멈춤’ (Pause)이란 진행되던 상황이 ‘재개’될 것이란 점을 의미한다. 결국 이번 회담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관리’에 방점을 둔 회담이었다. 서로 싸우던 적장이 잠시 ‘작전 타임’을 갖고 반칙 규정을 다시 한번 재점검한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은 시진핑과 악수하며 활짝 웃었지만, 회담 중 시진핑에게 미국이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계속할 것이다.” (will continue to compete vigorously with the PRC)라고 했다.

글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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