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떤 불운이나 슬픔, 고통도 껴안고 가야 하는 시간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요가 다녀왔습니다』 산문집을 출간한 소설가 신경숙씨. 30대 작가 시절 지나치게 스스로를 소진해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진 스스로를 요가를 하며 극복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경록 기자

최근 『요가 다녀왔습니다』 산문집을 출간한 소설가 신경숙씨. 30대 작가 시절 지나치게 스스로를 소진해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진 스스로를 요가를 하며 극복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경록 기자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돈 벌기가 어렵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쉽게 상처받는다…. 이런 식의 안 된다, 어렵다 증후군으로 괴로운 사람들은 소설가 신경숙의 새 산문집을 펼쳐봐도 좋겠다. 뜻밖의 제목, 『요가 다녀왔습니다』(달)이다. 작가로서, 성숙을 지향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자신에게 닥친 간단치 않은 역경들을 요가 체험을 통해 극복한 이야기가 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씨는 1990년대부터 국내 독서계의 스타 작가였다. 소설책을 내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하지만 화려한 외양과 달리 속으로는 앓고 있었다고 한다. 체력이 바닥나 과연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진 채 마흔을 맞았다. 지나치게 소진한 탓이다.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기다림에 인색해지고 "마구 날뛰는 말 한 마리가 심장 부근에 살고 있다가 어딘가로 내달리는 느낌"이었다고 썼다. (37쪽)

산문집 『요가 다녀왔습니다』 펴낸 소설가 신경숙씨

 그러다 마주친 게 동네 요가원. 효과는 놀라웠다. 신씨는 인터뷰에서 "이 책은 요가책이 아니다. 나는 요가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책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신씨의 각별한 경험은 요가의 '특효'를 간증한다.
 두어 가지 요약하면, 우선 몸이 가벼워진다. 물론 처음에는 격렬한 산행 뒤끝처럼 온통 쑤신다. 3주쯤 지나면 통증이 옅어지다 사라진다. 한 달쯤 지나니 믿기지 않게 몸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몸 상태가 좋아지니 사람까지 상냥해졌다.
 두 번째, 마음. 요가를 하는 동안 잡다한 생각들이 떠나갔다. 쓰고 있던 소설 생각마저 떠나갈 정도였다. 기쁘면서도 두려웠다고 한다. 너무 깊게 빠져 소설 쓰기를 그만둘까 봐서다.

『요가 다녀왔습니다』표지.

『요가 다녀왔습니다』표지.

 무엇보다 신씨는 책의 서문에서 요가를 하며 체득한 삶의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나아가지 않고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 앞이 아니라 뒤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살아가는 힘을 반드시 희망에서만 얻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배치한 글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한'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것들이 남겨놓을 무늬들을 끌어안기로 한다"고 쓰기도 했다. 예상대로 되지 않고 결말도 모르지만 앞으로 나가보는 것. 그것이 희망이기도 반대로 절망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이런 얘기도 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요가는 몸의 수련인가. 마음의 담금질인가. 아니면 철학인가.
 -요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요가를 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밝힌 책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진다. 요가는 뭔가. 일종의 수련 아닌가.
 "수련 아니라니까."
 -책을 보니, 요가에는 호흡도 있고 명상도 있다.
 "관찰도 있다. 건강할 때는 몸의 소중함을 모른다. 요가를 하면서 비로소 내 몸을 들여다보게 됐다. 온몸이 불균형 자체더라."
 -잡념도 없어진다고 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오전 9시부터 1시간 10분 동안 그냥 요가 선생님에게 나를 맡긴다. 그게 너무 좋다. 아무 생각 안 해도 되고 잡념이 없어진다. 예전에는 항상 머릿속이 번잡하고 뭔가 과부하에 걸려 있고 시달렸다. 요가 하고 달라졌다."

신씨는 "누구나 밤길을 걷는 것 같은 시간, 내 책이 이런 시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 되면 좋겟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신씨는 "누구나 밤길을 걷는 것 같은 시간, 내 책이 이런 시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 되면 좋겟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화가 나면 달 경배 자세를 취한다고 책에 썼는데.
 "잡념이나 통증, 두통에 시달리는 날 하는 요가가 특히 더 좋았다."
 -깊이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만큼 매력적인가.
 "내가 뭘 하나 시작하면 그거에만 막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실패나 제자리걸음을 괴로워하지 말라는 얘기도 썼는데.
 "어제(지난 22일) 손세실리아 시인이 운영하는 제주도 동네책방 '시인의집'에서 독자 30~40명을 만나는 행사를 했다. 지난해 출간한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관해 주로 얘기했는데 이번 산문집 『요가 다녀왔습니다』 얘기도 나왔다. 어떤 분이 내 책을 가져왔길래 사인을 해주며 '새 꿈 꾸고, 그 꿈을 이루세요'라는 문장을 써줬더니 눈물을 글썽이더라. 왜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새 꿈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그런 것 같다'고 답하는 거다. 살면서 희망이나 꿈을 계속해서 품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불운이나 슬픔, 고통을 잘 껴안고 가야 하는 시간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씨의 요가 산문집은 원래 지난달 말 출간 예정이었다. 하지만 2주가량 늦췄다. 이태원 참사 때문이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누구나 어두운 밤길을 걷는 시절인 것 같은데, 이런 시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