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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 끊겠다"…盧때 만든 '화물차 업무개시 명령' 첫 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집단운송 거부 중인 시멘트 수송차량(BCT)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이 발동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도입된 화물차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이 시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교통부는 29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14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화물연대 조합원 중 시멘트업계의 집단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에 정부가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29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레미콘 업체에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29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레미콘 업체에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오늘 국무회의에서 국가 경제에 초래될 심각한 위기를 막고 불법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ㆍ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법무ㆍ행안ㆍ산업ㆍ고용ㆍ해수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 경찰청장까지 배석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 뒤 가진 브리핑에서 “집단 운송거부로 인해 국가 경제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며 “업무개시 명령은 피해 규모ㆍ파급효과 등을 종합 감해 물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시멘트 분야 2500명을 대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운송 거부 중인 시멘트 수송차량의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이 송달될 예정이며, 이들은 명령서를 받은 다음 날 24시까지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불응하면 운행정지(30일), 자격 취소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지며 고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수단인 만큼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제도가 도입된 이후 화물업계 관련 업무개시명령이 이뤄진 건 한 차례도 없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콘크리트 타설이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으로 콘크리트 타설이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화물차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3년 화물연대의 연이은 파업으로 인해 철강과 시멘트업계는 물론 수출입 등 산업계 전반에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이듬해 비상대응책으로 마련됐다.

정부가 첫 조치 대상으로 시멘트 운송 분야를 정한 건 전국 건설현장의 작업이 멈추는 등 피해가 크다고 봐서다. 국토부에 따르면 6일째 접어든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시멘트 출고량이 평시 대비 약 90~95% 감소하는 등 시멘트 운송 차질, 레미콘 생산중단에 따라 전국 대부분 건설현장에서 공사중단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불법 운송거부로 인해 시멘트 출고량이 90% 이상 급감하고, 건설현장의 약 50%에서 레미콘 공사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기 지연, 지체상금 부담 등으로 건설업의 피해 누적되면 건설원가, 금융비용 증가로 산업 전반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이는 건설산업발 국가경제 전반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명령 통지를 받으면 이른바 ‘레미콘’으로 불리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 사업자는 법에 따라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화물연대는 지난 24일부터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및 영구 시행 ▶철강ㆍ자동차ㆍ사료 등 안전운임 적용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집단운송거부에 들어갔다.

반면 정부는 안전운임 일몰 3년 연장 외에 다른 요구 사항은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28일 첫 협상을 가졌으나 현격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1시간 30분 만에 결렬됐다. 2차 협상은 30일로 예정돼 있다.

안전운임제는 과로ㆍ과속 등을 막기 위해 화물 차주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그보다 적은 돈을 지불하는 화주에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됐다. 3년 한시로 2020년부터 적용됐으며 올해 말 종료 예정이다.

추 부총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며 화물연대에 날을 세웠다. 그는 “불법적 운송거부와 운송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용 없이 엄정히 조치하겠다”고도 했다.

정부와 화물연대의 협상이 28일 결렬된 이후 2차 협상 이전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면서 ‘강 대 강’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개별 차주에게 업무개시명령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쟁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운송 기사 대부분이 고정된 출근 장소가 없는 만큼 명령서를 받지 못 했다고 주장하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원 장관은 “고용자 또는 동거 가족에게 3자 송달을 하면 바로 효력이 발생하게 돼 있고, 그것도 안 되면 공시하는 방법도 있다”며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로 알릴 경우 최소한의 시간이 지나면 명령이 송달된 것으로 보는 유사 행정절차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을 환영하며 조속히 물류 정상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정당한 명분 없이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고 집단운송거부를 하는 화물연대는 당장 업무에 복귀하기를 촉구한다"며 "정부도 산업현장에서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를 엄정히 단속하고 필요하면 다른 업종의 업무개시명령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 등 경영계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상의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 나가고자 했음에도 산업현장 셧다운 등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멘트 분야 업무개시명령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고, 경총은 “시멘트 분야 이외에도 국민 생활과 직결된 철강·자동차·정유·화학 분야 등도 한계에 다다른 만큼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업무개시명령 확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무역협회는 “더 이상 산업 현장에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행동에 대해 단호히 대응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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