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구하려 ‘전력 도매가’ 낮추는 정부…“시장경제 과도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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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전력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 정부가 상한선을 적용한다. 최악의 영업손실을 보고 있는 한전의 부담을 발전사가 분담하도록 하는 취지다. 그러나 민간 발전업계는 “시장경제 체제에 어긋나는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한국전력 서울본부. 뉴스1

서울 중구 을지로 한국전력 서울본부. 뉴스1

21일 정부와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12월 1일부터 SMP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있다. 국내 전력시장은 한전이 각 발전사(도매상 격)로부터 전기를 사들여 소비자에 소매하는 구조다. SMP는 한전이 발전사에 치르는 ‘전력 도매가’에 해당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평균 킬로와트시(㎾h)당 129.72원이었던 SMP는 이후 계속 상승해 지난달 253.25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한전이 파는 ‘전력 소매가’는 ㎾h당 12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력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다.

반대로 만약 SMP 상한이 ㎾h당 160원으로 적용된다면 단순 계산으로 발전사가 90원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민간 발전업계에서는 SMP 상한제 도입을 반대해 왔다.

특히 업계는 SMP 상한제와 관련한 정부의 제도 개편에서 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8일 산업부는 박일준 제2차관 주재로 에너지 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이보다 앞선 14일 이미 SMP 상한제 관련 규정 개정의 내부 작업을 마무리해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간담회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의견을 듣겠다고 한 것”이라며 “정부는 ‘한전 상황이 엄중하니 기업이 이해해 달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정부는 SMP 상한 수준을 과거 10년간 가중평균 SMP의 1.25배 수준으로 정하려다 이후 1.5배로 완화했다. 상한제는 연료비 등 시장가격이 급등해 최근 3개월 가중평균 SMP가 직전 10년간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 이상일 경우 발동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는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기조로 SMP 추이를 모니터해왔으나, 올겨울 상황이 심상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전기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시장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우선 3개월간 한시적으로 SMP 상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민간 발전업계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가 SMP 상한제의 목적을 ‘전기 소비자의 이익 보호’라고 해 놓고, 사실은 한전의 재무 개선을 위해 제도를 추진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전기 소비자 부담 증가의 본질적인 원인은 한국가스공사의 가스요금 등 발전 연료비가 상승한 것이 주된 요인인데, 발전사의 전력 판매가를 규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연료비가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 등 100㎾ 미만의 소규모 발전기를 SMP 상한제에서 제외하고, 전력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발전 공기업에는 각종 비용과 투자보수를 보전하는 제도를 운영해 민간 기업이 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고, 단체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올해 1~3분기 누적 21조83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년간의 영업손실(5조8542억원)의 3.7배에 이르는 수치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SMP 상한제를 도입하면 한전의 적자가 약 1조5000억원 개선될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제도 자체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미 적자를 보고 있는 민간 발전사는 대규모 적자를 보게 하고, 이익을 내는 일부 사업자도 저렴한 연료를 도입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SMP 상한제는 정부가 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며 “한전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전기요금을 현실에 맞도록 대폭 인상하는 소위 ‘빅스텝’을 단행하고, 정부가 한전에 재정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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