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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서 탔는데, 내리라니"…광역버스 입석금지 첫날 출근길 표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KD운송그룹 계열 경기지역 13개 버스업체의 광역버스 '입석 승차 금지' 시행일인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버스정류장에 출근길 시민들이 줄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KD운송그룹 계열 경기지역 13개 버스업체의 광역버스 '입석 승차 금지' 시행일인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버스정류장에 출근길 시민들이 줄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어제는 서서 갈 수 있었거든요. 오늘은 아예 갈 수 없다는데 어떡하죠.”

 18일 오전 7시 4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촌 한신아파트 인근 버스 정류장. 승객 4~5명 뒤에 이어 서울 종로로 가는 G8110 버스 계단에 발을 디뎠던 30대 직장인 임정연씨는 이내 돌아서야 했다. 버스 기사가 “승차 인원이 다 찼다”며 “내려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지각하면 안 되는데 늦을 것 같다”며 난처해 했다.

경기 광역버스 입석 중단 첫날 표정

18일 오전 분당 서현역 인근 이매 한신아파트 버스 정류장. 사진 채혜선 기자

18일 오전 분당 서현역 인근 이매 한신아파트 버스 정류장. 사진 채혜선 기자

 경기~서울 광역버스 노선의 46%(146개 노선 1473대)를 차지하고 있는 KD운송그룹이 이날부터 경기도 광역버스 입석 승차를 전면 금지하는 준법 운행에 나서면서 이날 아침 경기도 내 여러 버스 정류장에서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같은 정류장에서 만난 직장인 송모(32)씨는 “평소보다 10~20분 서둘러 나왔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붐비는 분당 판교역·현대백화점 버스정류장에서는 만석인 버스가 정류장을 수차례 지나치기도 했다. 버스 앞머리에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입석 운행을 중단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일단 우려했던 ‘출근길 대란’ 없었다는 게 경기도의 자체 평가다. 경기도 관계자는 “입석 중단조치가 사전에 많이 알려져 지하철 등 대체 교통수단으로 출근객이 많이 분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풍선 효과처럼 이날 오전 인근 지하철역에는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지하철 신분당선(광교↔판교) 이용객인 직장인 30대 김모씨는 “유난히 탑승객이 가득 차 힘든 출근길이었다”고 말했다.

“불안해서 운전 못 해” 입석 금지된 속사정

KD운송그룹의 경기지역 14개 버스업체가 광역버스 입석 승차를 중단한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운행 중인 버스에 빈자리 '0'이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KD운송그룹의 경기지역 14개 버스업체가 광역버스 입석 승차를 중단한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운행 중인 버스에 빈자리 '0'이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2015년 도입된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2조에 따르면 자동차의 승차 인원은 승차정원의 110%까지 허용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승차정원을 지켜야 한다. 출퇴근 시간대 통근객이 몰리는 경기도 광역버스는 그동안 입석 운행을 계속해 왔다. 버스업체 관계자는 “입석을 막으면 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버스 앞을 가로막는 등 행패를 부리는 승객들이 적잖았다”며 “어쩔 수 없이 입석을 용인해 한 차에 최대 20명까지 태우곤 했다”고 말했다. KD운송그룹 계열 광역 버스의 입석률은 3% 정도로, 하루 평균 3000명 정도가 입석 승객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태원 참사’ 이후 ‘과밀 버스’ 등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급격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KD운송그룹 관계자는 “입석을 금지하지 않으면 사표를 쓰겠다는 버스 기사도 나왔고 사내에서 입석 운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기사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 결단한 일”이라고 전했다. 지난 7월 일부 버스 회사는 노조가 처우 개선 요구 중 하나로 입석 금지를 들고나오자 이를 수용해 이미 입석 승차를 금지했다. 도내 최대 운송업체인 KD운송그룹까지 동참하면서 일단 입석 승차 금지가 보편화된 셈이다.

그러나 출퇴근 길 불편을 견뎌야 하는 승객들과 버스 회사와의 갈등의 소지는 아직 남아있다. 이날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페이스북에는 “정부 및 수도권 지자체와 함께,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 대응 협의체’를 상설화하여 승객 불편과 혼잡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는 등 입석 문제에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는 등의 대책이 게재됐지만 냉랭한 반응이 적잖았다. “입석 불편보다 정시출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민도 있다” “차량을 두배로 늘려달라. 종로에서 뺨 맞고 영등포에서 화풀이하는 격” 등과 같은 댓글이 꽤 달렸다.

증차가 해답일 수 있지만, 예산이 문제다. 고준호 경기도의원(건설교통위원회)은 “장기적으로 입석이 금지돼야 하는 건 맞지만,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버스 특성상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적잖았다”고 말했다. 버스 기사 구인난도 증차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KD운송그룹 관계자는 “증차를 위해선 일단 버스를 끌 기사가 2000명은 돼야 하지만 기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버스 기사 구인난 등은 장기적으로 해결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경기도는 입석 문제 해소를 위해 ▶이층 버스 도입 ▶전세 버스 투입 ▶준공영제 도입 등을 추진해 2019년 9%대였던 입석률을 올해 9월 기준 3%까지 떨어트렸다. 현재 출퇴근길 기준으로 정규 65대·전세 67대 등 버스가 261회 운행되지만, 승차난 해소를 위해서는 정규 152대·전세 135대 등 버스 482회 운행이 필요하다는 게 도의 판단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전세 버스 물량을 오는 12월까지 우선 확보할 계획”이라며 “물량 확보 등이 이뤄진다면 사태는 전반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광역버스 입석 문제는 안전을 위해 진작 해결됐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경기도 등 엮인 지자체가 많아 통합 업무 등이 쉽지 않을 텐데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의 관리·감독 권한 등을 강화해 유기적으로 사안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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