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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중산층?" 중산층이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 까닭[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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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중산층
구해근 지음
창비

"당신은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설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1980년대에는 70%를 웃돌았다. 반면 2010년대 설문조사에선 40%대, 심지어 20%대로도 나온다.
중산층이 IMF 외환위기 이후 크게 줄어든 것은 주지의 사실. 2013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중산층 70% 복원'을 내건 것도 그 방증이다. 한데 주관적 설문을 통해 측정한 '체감 중산층'은 실제 중산층보다 더 크게 줄었다. 중산층인데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사회학자인 이 책 『특권 중산층』의 저자는 이를 간단히 설명한다. 중산층에 대한 중산층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양극화와 함께 중산층이 위축되고 대다수 일반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하향이동의 위협을 항시적으로 느끼고 있는" 집단이 된 가운데 일부 소수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잘나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특권적 기회를 많이 누리는" 계층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을 저자는 '부유 중산층' '특권 중산층' '신 상류 중산층' 등으로 부른다.

중산층 내부의 양극화 

알다시피 양극화에 따른 중산층의 위축 또는 몰락은 최근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이 책은 중산층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진다고 강조한다. 정밀한 수치는 아니지만 저자가 가늠하는 부유 중산층의 규모는 소득 수준 기준 상위 10%. 책에는 최상위 1%만 아니라 상위 10%도 양극화에 따른 부의 편중에서 수혜를 입었음을 보여주는 통계들이 나온다.

이 책은 한국 중산층의 형성 과정과 분화 과정부터 살피며 서구와 다른 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유럽 부르조아지가 퇴폐한 귀족 계급과 다른 종교적·도적적 가치를 내세운 것과 달리 한국 중산층에게 근대화는 곧 서구화였고, 경제적 지위에 대한 인식이 중심이었다는 점 등이다.

나아가 이 책은 부르디외가 말한 '계급 구별짓기'가 새로 등장한 부유 중산층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크게 세 가지 초점에서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명품·웰빙 등 소비를 통한 신분 경쟁, 글로벌화를 포함해 갈수록 심화되는 교육경쟁, 그리고 서울 강남으로 대표되는 주거지의 계층적 분리다. 저자에 따르면 강남은 이른바 파워엘리트가 대규모로 과잉밀집한 점에서도 전 세계에서 드문 지역이다. 전문직 엘리트는 과거 '졸부'로 불리던 강남 부유층 이미지를 바꿔놓았지만, 저자는 한국의 부유 중산층이 서구에서 말하는 '능력주의 엘리트'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소득이 아니라 부동산을 통한 부의 축적이 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부터 그렇다.

'구별짓기'의 세 가지 초점

특히 천정부지로 치솟은 강남 부동산 가격은 이제 웬만한 일반 중산층의 강남 이주를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부유 중산층의 이런 공간적·지리적 밀집이 소비나 교육 등에서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부유 중산층의 방식이 전체 중산층의 준거가 되어가는 양상을 설명한다. 부유 중산층과의 비교는, 중산층이면서도 스스로 중산층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영문으로 먼저 펴냈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기존에 참고한 여러 연구자의 논문과 저서에 더해 새로 언급하는 책이 『세습 중산층 사회』다. 저자는 중산층에 진입하는 문이 점점 좁아져 이미 중산층에 속한 부모의 재정적·사회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는 이 책의 논지에 공감하면서도, 과연 부유 중산층에게 '세습'이 얼마나 공고한 것인지 되묻는다. 국내 명문대 진학, 대기업·전문직 취업 등의 좁은 문과 치열한 경쟁 상황을 지적하며 저자는 '세습'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 나아가 이것이 부유 중산층 가정의 핵심적 불안이란 점을 주장한다. 이와 달리 부유층은 대학입시에 실패해도 사업체나 풍부한 재산으로 계급 세습이 가능하고, 국내 명문대 아닌 선택지를 해외에서 실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중산층 분화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과거 중산층이 지녔던 의미에서 드러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산층이란 "가난에서 막 벗어나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도 이제 남만큼 살게 됐다고 느낄 때" 그 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개념, "경제 상황의 개선과 계층 상승에 대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낙관적 기대"를 함축하는 개념이었다. 저자는 중산층이 일종의 사회적 열망이자, 노력과 보상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사회계약 역할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중산층은 더이상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이며 상향이동적인" 집단이 아니다. 저자는 중산층이 내부 양극화를 통해 숫자가 줄어든 것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와해 내지는 공동화되고 있다"고 본다. 중산층은 과거에 기대됐던 "사회의 안정적·통합적 세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저자는 중산층이 향후 "경제적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한 계층집단"으로 "정치적 불안정과 가변성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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