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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삭제” 지난해 중국서 폐지된 학과만 804개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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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험이 끝나면 수험생들은 어느 학과에 지원할지 결정해야 한다. 본인이 선택한 학과가 폐지되는 것은 상당히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씁쓸한 일이 지난해 중국에선 꽤 자주 발생했다.

804개.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폐지된 학과 수다. 중국 대학에서 해마다 사라지는 전공의 수가 늘고 있다. 데이터 전문 업체 칭타(青塔)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중국에서는 2346개의 학과가 사라졌다.

[사진 ZAKER]

[사진 ZAKER]

단순히 비인기학과가 폐지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폐지된 전공 목록에는 아직도 학생들의 선망을 받거나 인지도가 높은 전공이 포함돼 있다.

지난 5년간 중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폐지된 학과는 공공사업관리(公共事業管理)였다. 그다음으로는 정보관리 및 정보시스템(信息管理與信息系統), 패션 및 의류디자인(服裝與服飾設計), 제품설계(產品設計), 정보 및 계산과학(信息與計算科學)이 뒤따랐다. 이 학과들은 5년 동안 각각 83개, 77개, 65개, 51개, 50개나 사라졌다. 공통된 폐지 사유로는 ‘신입생 모집난’, ‘모호한 전공 정체성’, ‘사회적 수요 불일치’ 등이 꼽혔다.

지난 5년간 중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폐지된 학과 TOP20 [사진 칭타]

지난 5년간 중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폐지된 학과 TOP20 [사진 칭타]

중국 대학 인기 학과의 시대별 변천사

대학의 인기 학과는 사회 변화나 수요에 발맞춰 달라진다. 2000년 이후 중국에서는 어떤 학과가 인기를 끌고 또 잃었을까?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은 2001년 미국의 반대를 뚫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국제무역, 국제통상과 같은 전공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 촉망받는 학과 이름 앞에는 습관처럼 ‘국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우정하오(吳正浩) 난징재경대 금융학원 당 총지부 서기는 “당시 국제경제, 국제무역, 국제금융 같은 학과들에 많은 수험생이 몰렸고, 이들은 졸업 후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거나 외국인과 사업하기를 꿈꿨다”고 회상했다. 당시 베이징에 소재한 대외경제무역대학의 가오카오(高考, 중국 대입시험) 합격선은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와 베이징대에 버금갈 정도로 높았다.

[사진 소후]

[사진 소후]

한바탕 대외 개방과 세계화 바람이 불고 난 이후, 중국에서는 미디어 관련 학과가 힘을 얻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산업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에, 신문과 방송 등 사람들의 관심을 독점하는 레거시 미디어 전공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 이공계와 농업계 전공으로 유명한 대학들도 유행을 좇듯 미디어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오늘날 폐지된 상당수의 미디어 관련 학과는 과거 이들 학교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중국에도 세계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무역과 비즈니스 관련 학과들의 인기가 한풀 꺾이게 됐다. 대신에 그 자리를 건축과 토목 관련 학과가 대체했다. 당시 중국의 부동산 경기 활황과 급속한 도시화는 2010년대 초반 토목건축공학과 붐을 일으켰다. 그 시절 토목 공정은 중국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으로, 가오카오 점수 600점 이상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중국 수능인 가오카오(高考)의 만점은 750점이다. 정확한 합격선은 지역별/전공별로 다르지만, 현재 중국의 TOP2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와 베이징대는 통상 가오카오 점수가 600점대 중반은 넘어야 입학할 수 있다.

토목건축을 전공한 학생들은 졸업 후 완커(萬科), 바오리(保利) 등 중국 최고 부동산 기업에 입사해 높은 임금과 빠른 승진을 누렸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이들이 후광을 잃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당시 중국은 “집은 주거용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는 ‘팡주부차오(房住不炒)' 정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발표된 이후, 중국의 부동산 산업 성장률은 점차 둔화하기 시작했고, 시장은 서서히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2020년 발표된 ‘3개의 레드라인(三道紅線)’ 규제정책은 부동산 기업의 자금 압박을 더욱 심화해 헝다를 비롯한 여러 회사에 잔인한 종말을 선고했다. 이에 중국에선 “3000위안(약 57만 원)으로 농민공(農民工, 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은 뽑을 수 없지만, 토목건축 전공 졸업생은 뽑을 수 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3개의 레드라인(三道紅線)은 중국 정부가 자국의 부동산 기업에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한 3가지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①선수금을 제외한 자산 부채비율 70% 이상 ②순 부채 비율 100% 이하 ③현금·단기부채비율 100% 이상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폐지된 '이 학과' 왜?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14차 5개년 계획 기간 고용 촉진 계획(“十四五”就業促進規劃)’을 통해 “대학 학과 배치를 최적화하고 시장 수요에 맞지 않는 전공을 적시에 줄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중국 대학에서는 학과 신설 폐지가 이전보다 훨씬 더 거침없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라진 학과는 공공사업관리(83개), 정보관리 및 정보시스템(77개), 패션 및 의류디자인(65개)이다.

공공사업관리학과는 한국으로 치면 행정학과와 비슷하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에서 공공 사업관리학과를 신설한 대학의 숫자는 10배가량 증가했다. 21세기 초 중국의 정부 기능이 다변화하고 사회 관리가 복잡해지면서 이 분야의 인재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공 특색과 구직 방향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 5년간 중국에서는 83개의 공공사업관리학과가 폐지됐다. 현지 매체 36 kr 은 공공사업관리학과가 폐지된 주요 원인을 “무엇이든 배우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什麼都學,什麼都學不精)”라고 설명했다.

정보관리 및 정보시스템학과 역시 전공 특색이 부족하고 커리큘럼이 불명확하여 여러 대학에서 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이름에서 기대되는 것과 달리, 이 학과 전공생들은 프로그래밍보다 수학을 더 많이 배운다. 또한, 커리큘럼 내 실습보다 이론 수업의 비중이 높으며, 인프라가 미비해 프로그래밍 등은 학생들이 독학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패션 및 의류디자인학과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의류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에는 의류 수출 부진과 국내 소비 감소로 덩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중국 중서부 지역 대학은 의류 공급망과 유통 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패션 및 의류디자인학과 폐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차이나랩 권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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