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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50) 단지(斷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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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단지(斷指)
장지성(1945~)

무서리 늦가을은
바람결도 어질머리
객혈하는 초목들을
햇살이 보듬으며
손 베어 공양(供養)하는가
혈기 도는 만산홍엽.
-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아름다운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길을 가다가도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곳곳에 가을 나무들의 절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시인은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은 바람결에도 어지럽다고 하였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잎을 초목들의 객혈로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낙엽은 나무가 살기 위해 몸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었군요. 만산홍엽(滿山紅葉)을 거대한 자연이 손을 베어 공양하는 것으로 그려냈으니 늦은 가을에 만나는 생명의 색깔입니다.

장지성(張芝城) 시인은 본명이 충섭(忠燮)으로 충북 영동 태생입니다. 시와 소설,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고향에서 ‘장시인네 사과밭’을 경영하며 농사짓고 글 쓰는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도 시인의 정성을 먹고 영근 사과는 무척 달았다고 합니다.

인생사는 복잡다단해도 이렇게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자연이 아낌없이 보내주는 핏빛 사랑 속에서······.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