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태영 "손흥민 마음, 2002년 '타이거 마스크' 투지 같을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김태영. 강정현 기자. 강정현 기자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김태영. 강정현 기자. 강정현 기자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때 팬들의 그 함성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거든요."

전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김태영(52)은 2002 한·일월드컵만 떠올리면 아직도 흥분한다. 당시 한국의 주전 수비수로 뛰었던 그는 포르투갈(조별리그), 이탈리아(16강), 스페인(8강) 등 세계적인 강호들의 공격수를 상대로 철통 방어를 펼치며 '4강 신화'를 쓰는 데 일조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열흘 앞둔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태영은 "월드컵 첫 경기를 일주일 앞뒀을 때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면서 부상까지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선수들에겐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했다.

 2002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후배들에게 조언한 김태영. 강정현 기자

2002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후배들에게 조언한 김태영. 강정현 기자

김태영은 "예민한 선수들은 동료와 충돌하면 폭발하고는 한다. 나는 2002년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을 앞두고 훈련하다 선배였던 (황)선홍이 형과 주먹다짐까지 할 뻔했다. 내가 실전처럼 타이트한 수비를 하다 깊은 태클을 했는데, 승리욕 강한 선홍이 형이 피하지 않아 분위기가 과열됐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당시 나도 선홍이 형도 팀의 최고참급이었는데, 박항서 코치님이 중재와 함께 내가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고 설명했다.

김태영은 2002년 '타이거 마스크'로 불렸다. 코뼈 골절 부상을 당한 16강 이후 줄곧 마스크를 쓰고 뛰었다. 강정현 기자

김태영은 2002년 '타이거 마스크'로 불렸다. 코뼈 골절 부상을 당한 16강 이후 줄곧 마스크를 쓰고 뛰었다. 강정현 기자

대신 첫 경기를 잘 풀어낼 경우엔 2, 3차전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영은 "폴란드전을 2-0으로 이기면서 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때부터 목표를 1승에서 16강 진출로 수정했다. 미국, 포르투갈을 상대로도 대등한 경기를 할 만큼 상승세를 탔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함께 H조에 편성됐다.

첫 경기는 오는 24일 우루과이전이다. 김태영은 "당시 폴란드가 유럽예선에서 도깨비 팀이라고 불릴 만큼 공격력이 좋은 팀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맞붙을 우루과이와 닮은 점이 많은 팀이었는데, 후배들이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상대"라고 확신했다.

독일과 4강전에 마스크를 쓰고 나선 김태영(왼쪽). [중앙포토]

독일과 4강전에 마스크를 쓰고 나선 김태영(왼쪽). [중앙포토]

김태영은 한·일월드컵 당시 '타이거 마스크'로 불렸다.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상대 공격수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팔꿈치에 안면을 가격 당해 코뼈가 함몰되는 골절상을 입은 뒤, 나흘 뒤 스페인과 8강전에 붉은색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뛰었기 때문이다. 김태영은 "아무도 뛰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진통제를 맞고 마스크를 썼다. 다리를 다쳐서 못 뛰는 것도 아닌데, 벤치에서 쉴 수 없었다"면서 "4년을 기다린 월드컵에 뛸 수 있다면 통증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경기에 출전했다. 아마 지금 (손)흥민이도 그런 심정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안면 골절 부상을 입고 수술한 손흥민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김태영이다. 뉴스1

안면 골절 부상을 입고 수술한 손흥민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김태영이다. 뉴스1

한국 대표팀의 캡틴 손흥민(30·토트넘)은 지난 2일 마르세유(프랑스)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경합하다 충돌해 안면 골절을 입었다. 눈 주위 뼈가 네 군데나 부러지는 부상이었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월드컵에 뛰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손흥민은 "월드컵에 갈 수 있다"면서 한국 대표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현 상태로 경기에 나서기 위해선 과거 김태영처럼 안면 보호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다.

김태영은 "지금 흥민이의 마음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면 부위는 수술한 이후 심한 두통이 밀려온다. 이런 가운데 월드컵에 뛰겠다는 메시지를 준 흥민이의 의지가 대단하다. 그런 각오면 분명 이른 시일 내 회복해서 그라운드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영은 "마스크는 투지, 투지가 곧 마스크"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태영은 "마스크는 투지, 투지가 곧 마스크"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태영은 손흥민의 월드컵은 '통증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를 뛸 때 마치 목숨을 걸고 싸우는 흥분 상태여서 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마스크에 시야 가려지는 건 물론이고 헤딩할 때마다 마스크가 틀어지는데, 불편하면서 아프기도 하다. 무엇보다 경기 후 숙소에 도착하면 진통제 효과가 사라지면 얼굴이 붓고 고통이 밀려온다. 몸과 상처가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욱신거린다. 이건 안면을 다친 사람만 아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20년 전 부상 부위를 가리키는 김태영. 강정현 기자

20년 전 부상 부위를 가리키는 김태영. 강정현 기자

김태영이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뛰는 팬과 국민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팬들의 응원에 내가 부상 당한 것도 잊었다. 그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선 멈출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태영은 "내게 마스크는 투지였고, 투지는 마스크였다. 흥민아 선배 그리고 팬의 입장에서 이번 부상이 너무 안타깝다. 국민의 뜨거운 응원이 있기에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네가 월드컵에서 뛰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주장답게 멋진 활약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격려했다.

김태영이 힘을 낸 건 팬들의 뜨거운 함성 때문이었다. [중앙포토]

김태영이 힘을 낸 건 팬들의 뜨거운 함성 때문이었다. [중앙포토]

김태영은 프로에서도 월드컵에서도 등번호 7번 달고 뛴 것으로 유명하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7번을 다는 손흥민과 공통점이다. 김태영은 "20년 전 타이거 마스크를 쓴 한국의 7번이 세계적인 골잡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는데, 20년이 지난 올해 카타르월드컵에선 한국의 7번 흥민이가 마스크를 쓰고 세계적인 수비수들을 상대로 골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응원했다.

후배들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화이팅 하는 김태영. 강정현 기자

후배들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화이팅 하는 김태영. 강정현 기자

김태영은 손흥민만큼이나 직속 후배인 수비수 김민재의 활약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김)민재는 유럽에서도 통하는 수비수다. '괴물'이라고 불릴 만하다. 내 전성기 시절과는 비교 안 될 만큼 빠르면서 지능적인 플레이를 한다. 워낙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 수비 상황은 물론 세트피스에서도 득점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흥민이도 민재도, 그라운드에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20년 전처럼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만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