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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조항 안만든 秋법무부…김봉현 '팔찌 끊은 죄' 못 묻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불리는 김봉현(48)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11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팔찌)를 끊고 달아났지만 입법 미비로 전자장치 훼손죄로는 처벌도 못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대신 김 전 회장을 전국에 수배해 체포해 주력하는 한편 공용물건 손상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2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도 도주한 뒤 5개월간 도피하며 밀항을 시도한 전력이 있었다. 그런 김 전 회장을 법원이 지난해 보석금 3억원에 석방한 뒤 최근 두 달 새 중국 밀항 준비 등 동향을 파악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두 번 기각하고 보석 취소 청구조차 제때 받아들이지 않은 걸 놓고 비판이 거세다.

1조6천억원대 자산 피해를 낳은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2021년 7월 남부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고 있다. 연합뉴스

1조6천억원대 자산 피해를 낳은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2021년 7월 남부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전자발찌훼손죄 처벌 못 해…공용물건손상 수사 의뢰”

현행 전자장치부착법에 따르면 성폭력·미성년자 유괴·살인·강도 등 4대 강력 범죄를 저질러 형 집행 종료(면제·가석방 포함) 후 전자발찌(팔찌)를 부착한 사람이 몸에서 임의로 분리하거나 손상하면 전자발찌 훼손죄를 적용해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라임 펀드 투자금 400억원을 포함해 100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던 도중 피고인 신분으로 ‘전자장치 착용 조건부 보석제도’로 석방된 뒤 팔찌를 훼손한 경우여서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다. 형 집행 후 전자발찌를 부착한 4대 강력사범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2020년 2월 전자장치부착법 개정 당시 전자장치 조건부 보석 제도로 석방된 피고인의 경우 전자장치를 훼손하더라도 보석 결정 법원과 관할 검사에 즉시 통지해 보석 결정을 취소하도록 할 뿐 별도 처벌조항을 마련하지 않았다.

전자장치 보석 제도는 지난 2020년 8월부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시행된 제도로, 불구속 재판 원칙을 현실화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교정시설 과밀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유무죄를 확정받지 않은 피고인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건 인권침해 여지가 높다는 지적에 따라 전자발찌 대신 손목시계형 장치인 ‘팔찌’를 부착하게 됐다.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 피해를 촉발한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알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최근 모습. 서울남부지검 제공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 피해를 촉발한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알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최근 모습. 서울남부지검 제공

김 전 회장이 아예 처벌을 피한 것은 아니다. 전자장치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공용물건손상죄가 적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무부 서울보호관찰소는 김 전 회장이 달아난 지난 11일 경찰에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고 현재 서울 수서경찰서가 담당하고 있다.

실제로 인천지법은 보석 중에 전자장치를 끊고 달아난 함바왕 유상봉씨에게 지난 9월 징역 4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유씨는 배우자가 위독해 긴급하게 병원에 입원시킬 필요가 있어 전자장치를 훼손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건강 상태가 위독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설사 긴급하게 입원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전자장치 훼손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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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보석 허용→구속영장 두 번 기각, 도주 후에야 ‘뒷북’ 보석 취소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11일 곧장 김씨를 지명수배했지만 이날까지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검찰은 지난 9월 20일과 10월 12일에 김 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2차례 청구하고 대포폰들에 대한 통신영장까지 청구했지만 모두 법원 문턱에서 가로막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 전 회장은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스타모빌리티 자금 등 10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회장과 함께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촉발한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에 대해서 징역 20년과 벌금 48억원의 중형이 그의 도피 전날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앞서 2019년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영장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5개월간 도피해 부산에서 밀항까지 시도하는 등 수사기관이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택시를 7차례 갈아타고, 체포 직전까지도 수사관에게 위조 신분증을 제시하는 등 저항하다 결국 2020년 4월 서울 성북구의 한 주택가에서 체포됐다.

이후 2020년 5월 구속 기소된 김 전 회장은 1심 재판 도중인 지난해 7월 보증금 3억원과 전자장치 부착 등을 조건으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김씨가 중형을 예상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지난 9월 14일 김씨에 대해 추가 혐의(비상장 주식 사기)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보석 조건 위반이나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10월 7일 김씨가 중국 밀항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변인을 진술을 확보하고 횡령 혐의를 추가하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됐다. 검찰은 이에 10월 26일 재판부에 “선고 시 법정구속을 예상해 중국 밀항을 준비한다는 내부자 진술을 확보돼 도주할 염려가 크다”며 보석 취소를 청구한 상태에서 2주 만에 도주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김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정치권에 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데 도주가 예견됐고 사실상 법원이 방조했다”며 “비정상적으로 지연되는 수사 재판은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 인사가 연루됐다는 권력형 범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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