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소리만 요란한 ‘라임 2년’…김봉현 풀려났고 몸통들 잠적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05:00

업데이트 2021.09.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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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7월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 남부지법에서 열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일 재판부가 보석을 인용하면서 약 1년3개월 만에 석방됐다. 뉴스1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7월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 남부지법에서 열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일 재판부가 보석을 인용하면서 약 1년3개월 만에 석방됐다. 뉴스1

"외부에서 보면 이상하겠지만, 라임 사태 관련해 제가 모르거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제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떠한 말씀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책임자인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에게 '그간 겪은 일을 이야기해줄 수 있냐'고 연락하자 최근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난해 7월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3년의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보석 허가에 따라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사기공화국 9회]라임 사태 2년, 빠져나간 라임 공범자들

1조6000억원 규모의 펀드 투자금을 고객들에게 돌려줄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희대의 금융사기 스캔들로 번진 라임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다. 라임 사태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원 대표의 "여전히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대답은 뜻밖이다. 법조계에선 그의 말 속에 최근 대형 금융사기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자신이 속한 범죄 카르텔에 누가 속해 있는지, 어디까지 연루됐는지 전체 그림은 누구도 모른다는 점에서다.

권경애 변호사는 "라임 사태를 설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원 대표도 전체 그림을 알지 못할 것"이라며 "사태가 2년이 지났지만, 여권 연루 의혹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라임 사태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 2019년 10월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 2019년 10월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라임 사태는 ‘라임 펀드의 환매 중단 사건’이 시작이다. 이후 ▶환매 중단 사태 무마를 위한 정·관계, 금융권 로비 사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검사 술접대 사건 ▶펀드 투자금을 통한 기업사냥과 횡령 사건 ▶검찰총장의 라임 사건 수사 배제와 사상 초유의 징계 처분까지 다양한 파생 사건을 낳으며 눈덩이처럼 그 규모를 키웠다.

2019년 10월 10일 원종준 대표와 이종필 라임 부사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그해 7월 검찰이 라임에 대해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 등으로 수사에 착수했고, 언론에서는 '펀드 돌려막기'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라임 관련자들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그 당시 라임 사태의 주범인 이종필 부사장, 김봉현 전 회장과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 등은 환매 중단을 막기 위해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그 당시 윤 전 고검장을 내세워 손태승 우리은행장에게 라임 펀드의 재판매를 청탁했다. 라임 펀드를 당시 6700억원 어치나 판매한 우리은행에서 재판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금 유입이 끊겨 환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당시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을 이유로 재판매를 거절했고, 결국 환매 중단 사태로 이어지게 됐다. 윤 전 고검장은 혐의를 부인하며 항소했다.

이와 별도로 김봉현 전 회장은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와 함께 정관계 유력인사를 통해 라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막기로 계획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는 기자 시절 친분이 있던 강기정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접근했다. 이 전 대표는 김 전 회장으로부터 강 전 수석 인사비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을 받아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강 전 수석은 "청와대에서 이 전 대표를 20분 만났지만, 돈은 안 받았다"는 입장이며, 검찰은 이에 대해 여전히 수사 중이다.

김 전 회장은 고향 친구인 김 모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뇌물을 주고 금융감독원 내부 문건을 빼돌리기도 했다. 김 전 행정관은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김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김봉현 전 회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19년 7월 검사 출신 변호사를 통해 현직 검사들에게 서울 강남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술 접대까지 했다. 접대 자리에 있던 검사 3명 중 1명이 기소됐다. 이들에 대해선 면직과 정직, 감봉 등 징계 처분이 진행 중이다.

라임자산운용 사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라임자산운용 사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라임 일당은 고객의 투자금으로 기업사냥에 나선 뒤 그 회삿돈을 빼돌렸다. 특히 김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은 모두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라임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알짜 회사인 수원여객을 탈취하고 회삿돈 241억원을 횡령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은 수원여객 탈취사건을 이종필 부사장과 공모하면서 밀접한 관계로 발전했고, 라임 펀드에 모인 투자자들의 돈을 기업사냥에 활용하는 데 이른다.

김 전 회장은 라임이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스타모빌리티의 전환사채에 투자하면 이 돈을 빼돌려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데 썼다. 그는 지난해 초 스타모빌리티 전환사채 대금 400억원 중 192억원을 향군상조회 인수에 썼다. 라임 펀드의 손실 가능성을 숨겨 2480억원어치를 판매해 징역 2년이 확정된 장영준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이 피해자와 대화에서 김 전 회장을 '라임 살릴 회장'이라고 지칭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초 이들은 향군상조회를 통해 펀드를 조성하고 라임을 인수할 계획도 세웠었다. 김 전 회장은 향군상조회에서도 올 초 378억원을 빼돌렸다. 공범인 향군상조회의 장 전 부회장은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 이외에 라임의 투자를 받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의 김정수 회장도 라임의 투자를 받기 위해 이종필 전 부사장 등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리드의 자금 44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부는 지난 6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이종필 전 부사장과 2019년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도주했다가 지난해 4월 경찰에 붙잡혔다. 그렇게 붙잡힌 김 전 회장은 '검찰이 야당 정치인의 범죄는 은폐하고 여권 인사에 대해 짜 맞추기 수사를 한다'는 취지의 옥중편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라임 사건에서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근거로 활용됐고,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사태까지 이르게 됐다. 서울남부지검의 수사 결과 김 전 회장의 옥중편지 대부분은 허위로 드러났다.

완성되지 않은 퍼즐…빠져나간 라임의 공범자들 

라임 사태의 퍼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라임과 연루된 핵심 인물들에 대한 처벌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일부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봉현 전 회장이 지난 7월 보석으로 석방된 것이 대표적인 논란이다. 그는 라임과 관련해 정관계 로비와 기업사냥, 횡령 그리고 도피, 허위 옥중편지까지 가장 많은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그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대부분 법정 구속됐는데, 이를 기획하고 지시한 인물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보석을 허가한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이상주)는 "신청된 증인이 수십 명에 이르러 심리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고,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라임 사태의 한 피해자는 "도주하다가 잡히고, 법정 증언도 계속 번복하는 악질인데 보석으로 풀어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김봉현 전 회장이 본 라임 사태 핵심 관계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김봉현 전 회장이 본 라임 사태 핵심 관계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인물도 있다. 라임의 펀드 자금 2500억원이 투입된 부동산 시행사 메트로폴리탄의 김영홍 회장은 필리핀과 캄보디아 리조트 사업 명목으로 약 2000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지만,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회장을 인터폴에 적색 수배했지만, 아직 검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이인광 회장도 자신이 실소유한 코스닥 상장사 에스모·에스모머티리얼즈 등을 통해 2000억원이 넘는 라임 자금을 투자받았다. 그는 주가 조작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라임 사태 가운데 불거진 여권 인사 상대 로비 의혹은 검찰이 여전히 수사 중이다. 의혹이 제기된 강기정 전 정무수석을 비롯해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 기동민·이수진(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두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측은 "김영홍·이인광은 현재 검거되지 않았고, 여권 인사 로비 의혹 사건은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환매 불가능했던 라임펀드 판 판매사, 감독 못한 금감원도 책임" 

라임피해자대책위와 우리은행 라임펀드 피해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라임펀드 판매사 우리은행의 신속한 기소와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대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라임피해자대책위와 우리은행 라임펀드 피해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라임펀드 판매사 우리은행의 신속한 기소와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대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라임 피해자들은 라임 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가 더 큰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은행에서 라임 펀드에 가입한 김자연(38·가명)씨는 "은행에서 부동산과 같이 담보를 가지고 있고 안정채권에 투자가 되기 때문에 절대 손실 날 상품이 없다고 설명해놓고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현재는 손실액의 61%만 보상해 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들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회사별, 펀드별로 피해 금액의 40~100% 수준을 배상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들은 재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라임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정철 변호사는 "라임 펀드는 애초에 환매가 불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판매사는 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고, 금융감독원은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며 "법원이 판매사에 대한 100% 책임을 지워야 혼탁해진 금융투자 시장이 바로 잡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대형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는 해법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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