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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인구정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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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2017년부터 우리나라에는 매년 30만 명도 안되는 아이가 태어났다. 기성세대인 베이비부머가 매년 90만 명이 넘게 태어났으니 초저출산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초저출산을 끊어낼 인구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매일 인구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구정책의 대상은 초저출산이 아니라 초저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제도와 정책은 인구가 커갈 때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근까지 인구는 계속 늘어왔고, 동시에 경제도 함께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익숙하고 당연한 제도와 정책들은 기성세대들의 인구 규모에 맞춰져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구 성장기 만들어진 제도·정책들
인구 축소기에 제대로 작동 어려워
새 정부 마련할 인구정책의 방점은
저출산 극복 아닌 미래 준비가 돼야

주택 정책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주택 정책의 중심은 신규 공급이었다. 인구도 가구도 늘어나니 공급을 늘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미 인구는 줄기 시작했고, 3~4인이 주로 살던 가구는 1~2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가구의 수도 줄어든다. 그럼 주택 정책의 방향도 따라서 바뀌어야 하는데, 한 번 만들어진 정책은 잘 바뀌지 않는다. 대학입시 제도도 생각해 보자. 대입에서 고등학교 내신 등급은 당락을 좌우한다. 등급제도가 변별력을 발휘하려면 한 학년에 그래도 수백 명은 되어야 할텐데, 이미 전국 고등학교 중 상당수가 한 학년 학생 수가 100여 명 남짓이다. 등급을 나눌 만한 수가 되지 않는데도 제도는 지속되고 있다.

한 연령대 80만~90만 명에 맞춰진 제도가 20만~30만 명대로 태어난 세대에게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예가 아니고도 일반적으로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20만~30만 명은 이미 태어나서 벌써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오늘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정책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자. 상상만해도 답답하다. 이처럼 변화되는 인구에 맞도록 다양한 사회 분야들을 미리 점검하여 수정이나 변경이 필요한지 살피고, 나아가 축소되는 인구가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 일은 아주 시급하고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인구정책의 초점이 저출산 문제보다 20만~30만 명이 살아갈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현실적인 고려다. 초저출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년이나 지속되고 있고, 출산율을 높이는데 초점을 두어 온 정부의 대응도 15년이나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구정책의 중심은 초저출산 극복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있다. 그런데 한 번 상상해보자. 현재 0.8 수준인 합계출산율이 정부가 특단의 조치(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를 취한다면 과연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까? 매우 어렵겠지만 내년부터 조금씩 올라가서 2030년대에 1.3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해보자. 그럼 그때부터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출생아 수는 출산율만이 아니라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성의 수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2030년대가 되면 40만 명대로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가 30대가 되어 자녀를 낳는 연령대에 들어간다. 40만 명대의 절반이 여성이니 한 연령대 여성의 수는 많아야 25만 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1.3의 출산율을 보인다 해도 2030년대에는 한 해 3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나기 어렵다.

출산율을 높여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는 주장이 절대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출산율이 2030년대에 1.3까지 올라가서 유지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도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30만 명을 넘지 못한다면 과연 출산율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이유는 전략적인 고려다. 저출산이란 단어가 지난 20년을 넘게 회자 되면서 국민에게 단어 자체가 식상해졌다. 게다가 저출산 극복이란 표현이 주로 정부와 기성세대로부터 등장하는 바람에 청년들에게 이 표현은 극도의 피로감을 넘어 폭력적으로 다가간다. 분명 의도는 아닐 테지만 저출산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정부와 기성세대의 목소리는 어쩌면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청년 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로 들릴 수가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저출산 극복만 강조하는 인구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

곧 새 정부의 인구정책 틀이 나올 것이다. 바라건데 인구정책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명칭부터 저출산과 고령화를 빼고 미래를 강조하도록 바꾸는 것이 그 첫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인구정책을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저출산 극복과 고령화 대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미래를 더 잘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저출산 프레임에서 벗어나 20만~30만 명대로 태어난 후속세대가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준비해 줄 인구정책이 필요한 때다. 그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면 강요하지 않아도 출산율은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