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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관련 용산서 전 간부 숨진 채 발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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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01면

‘이태원 참사’ 발생 전 작성된 핼러윈 안전사고 우려 내용이 담긴 정보보고서 삭제와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용산경찰서 전 간부가 1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축제(행사)안전관리계획 수립·심의 업무 등을 담당하는 서울시 안전총괄실 소속 공무원도 이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대기발령 중이던 전 용산경찰서 정보계장 정모(55) 경감이 이날 낮 12시 45분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9시쯤 서울 강북구 한 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가족분들께서 헛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다”며 “경찰청 차원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삶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핼러윈 축제 전 인파 급증에 따른 안전사고 발생을 우려하는 ‘이태원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가 참사 이후 삭제됐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사망한 정 경감은 김모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경정)과 함께 지난달 26일 작성된 이 보고서의 삭제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또 정보과장의 지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고서 작성자에게 작성 사실을 숨기자고 회유를 시도했다는 논란도 빚었다.

문제의 보고서는 특수본이 용산서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던 지난 2일 작성자의 PC에서 삭제됐지만, 다른 직원의 PC에서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특수본은 지난 6일 김 경정과 정 경감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증거인멸,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이날 정 경감의 극단적 선택 소식이 알려지면서 특수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정 경감의 소환 일정을 통보하거나 조율한 바가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25분쯤 서울시 안전총괄실 소속 50대 직원 A씨가 자택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외부침입 흔적이나 특별한 외상 등이 없는 점으로 미뤄 타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 중이나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A씨는 11일 반차를 내고 시청에 출근하지 않았다.

특수본, 박희영 용산구청장 출국 금지…구청·소방 참고인들 소환조사

11일 숨진 채 발견된 용산 서 전 정보계장 자택 앞에서 경찰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11일 숨진 채 발견된 용산 서 전 정보계장 자택 앞에서 경찰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A씨는 축제(행사)안전관리계획 수립·심의 업무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핵심 간부였으나 이태원 참사 특수본의 수사 대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특수본은 현재 A씨를 포함해 서울시 직원 중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수사 대상자는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A씨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에 재난상황실이나 이태원 현장에 근무한 사실이 없다”며 “정확한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등은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특수본은 용산구청과 소방 관련 참고인들을 이틀 연속 소환하며 사전 예방 대책 수립과 사고 후 대응이 적절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특수본은 전날 용산구청 안전재난과 직원을 소환해 핼러윈 데이 안전대책 수립과 집행 과정을 확인했다. 서울종합방재센터 직원을 상대로는 전반적인 119 신고 접수 처리 절차 등을 조사했다. 특수본 김동욱 대변인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근거로 “(소방이)재난이 발생할 우려가 현저할 때 인명구조와 응급조치 등을 해야 한다”라며 소방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 상위기관에 대해서는 법리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행안부와 서울시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범죄 혐의 관련성과 압수 수색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어느 기관이라도 관련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법리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특수본은 이날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해서도 업무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 금지 조치했다. 박 구청장은 핼러윈 안전대책 수립과 집행 과정 전반에 대해서 조사를 받고 있다. 박 구청장이 직접 밝힌 이태원 참사 당일 행적 일부가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구청장은 “(참사 발생 전) 사전 현장 점검을 두 차례 했다”고 밝혔다. 용산구 측이 지난달 말 중앙일보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지난달 29일 오후 8시 20분 ‘이태원 거리 현장 점검’에 나섰다. 참사 발생 시점으로부터 1시간 55분 전이다. 당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게 박 구청장의 설명이었다. 또 70분 뒤인 오후 9시 30분 ‘거리현장 2차 점검’에 나섰다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문서로 밝힌 시간대별 동선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참사 당일 자매결연 도시인 경남 의령군을 방문했다가 이날 오후 8시 20분쯤 관내로 복귀한 박 구청장은 이태원 외빈차고 주변에서 하차한 뒤 엔틱가구거리를 따라 8시 22분 자택 인근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용산구 측은 지난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구청장이) 평소 출·퇴근 길에 집 주변을 다닌다”며 “다만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쪽을 간 게 아니라 집 주변 퀴논길을 쭉 보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CCTV 상으로 박 구청장은 퀴논길 아닌 엔틱가구거리를 지났고, 현장 점검이라고 보기엔 시간도 2분 정도로 지나치게 짧은 편이다.

현재 박 구청장은 “2차 현장 점검은 없었다”고 초기 설명을 번복한 상태다. 박 구청장은 자택에 머물다가 이태원상인회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문자를 받고 오후 10시 51분 집을 나섰다. 용산구는 이에 대해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현장에서 구조 활동과 사상자 이송을 도왔고 충격과 트라우마로 경황이 없었다”며 “최초 해명을 번복하게 된 것은 불찰이나 당초 거짓말할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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