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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혼자 남으면 힘드니 데려간다" 사랑 가장한 살인 매년 2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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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혼자 죽으면 딸들이 살아가기 힘들다. 함께 죽는 것이 낫다.”

A씨는 2016년 자살을 결심하며 이렇게 다짐했다. 2009년 남편과 이혼한 뒤 아르바이트와 공장 일용직을 병행하며 딸들을 키웠는데 1억원의 빚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리면서 자살 충동을 느꼈다. 그는 미혼의 20대 두 딸(당시 22·28세)만 남길 수 없다는 생각에 먼저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수면제와 번개탄을 준비했다. 그러나 범행 도중 둘째 딸이 잠에서 깨어나며 미수에 그쳤다. 결국 A씨와 둘째 딸은 생존했고 첫째 딸은 숨졌다.

아동 학대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아동 학대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B씨는 2019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생활고에 직면했다. 직장인 학교에 채권자들이 들이닥쳤고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커졌다. 빚 때문에 온 가족이 어려움을 견디고 살 바에야 극단선택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자녀 만은 살리자고 수차례 설득했지만 B씨는 “내 새끼들 데리고 같이 죽고 싶다”며 당시 5, 7세인 두 아들을 살해했다. 남편도 사망했고 B씨 홀로 살아남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녀 살해 후 자살 매년 20명…“충격 큰데 잘 몰라”

A, B씨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시도했지만, 가해자인 부모가 생존하면서 범행 동기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다. 판결문을 통해 비극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통상 이런 사건에서 상당수는 관련자들이 사망한 뒤라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려운 게 한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여름 전남 완도에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도 생활고를 주된 원인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런 유형의 범죄는 통계를 내지 않아 현황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박기환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살해와 자살, 두 개의 행위가 근접한 시간을 두고 결합한 형태인데 각각에만 관심을 둬 관련 실태 조사와 연구가 전무하다”고 말한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다른 많은 자살의 경로는 심리 부검과 경찰 조사 연구 등으로 알고 있고 경고 신호를 교육한다”라며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드물긴 해도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데 누구도 잘 모른다는 게 한계”라고 지적한다. 백 교수는 “몇 년 치 자료를 들여다보고 아이들이 학교에선 어땠는지, 부모의 직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지막 행적은 어땠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나마 최근 국회 요구로 보건복지부가 2013~2020년 자살 사망자를 분석해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략적 현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 8년간 살해 후 자살사망자는 417명인데 이중 ‘자녀 살해’는 38.4%(160명) 차지한다. 연평균 20명꼴이다. 전체 자살사망자 성별은 남성(305명)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자녀 살해 유형에서는 여성 89명, 남성 71명이다. 30, 40대가 70%가량이다. 경제 문제(32.5%)를 주로 호소했고 가족 관계 문제(31.9%), 정신건강(26.3%), 등도 원인으로 조사됐다. 박기환 교수가 올 3월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왜곡된 이타주의 일 뿐, 명백한 살인”

C씨는 지난해 대출을 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2억원의 빚을 지게 되면서 자살을 떠올렸다. 그런데 11살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고 딸이 잘 자라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딸부터 목 졸라 살해했다. C씨도 자살시도했지만 딸의 교사에게 발견되면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재판부는 “어린 피해자가 홀로 살아가게 될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더라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말아야 했다.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올해 1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지난 6월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관계자가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전남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 가족의 차량을 인양한 뒤 조사를 위해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관계자가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전남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 가족의 차량을 인양한 뒤 조사를 위해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백종우 교수는 “부모라도 자식의 생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명백한 살인이고 최악의 아동학대”라고 지적한다. 자식을 그냥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은 왜곡된 이타주의일 뿐 어떤 이유에서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구 시급한데 자료 확보도 난항 

최아라 광주대 아동학과 교수는 “피해자 대부분은 유아·학령기 아동이라, 부모의 신변에 위험이 있어도 인지하지 못하고 저항조차 못 한 채 당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 없는 자녀의 삶이 불행할 거라는 인식 대신 국가와 사회가 양육을 함께 한다는 믿음이 확산하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아동 인권 교육도 해야 한다”고 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복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언론 보도로 다수에 심리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만큼 위기 요인을 분석해 예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배미남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코로나19로 향후 자살자가 늘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라며 “아동·청소년의 부모일 가능성이 큰 중장년층에서 자살자가 가장 많은 만큼 촘촘한 그물망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복지부는 자료 확보 단계부터 애먹고 있다. 그간 복지부가 경찰청 등과 협조해 자살자 전수를 조사하고, 살해 후 자살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게 가능했는데 이 사업이 지난해부터 중단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이 개정돼 경찰청에서 앞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를 이관하게 됐지만 원래 받던 수준을 요구하려면 필요성을 설득해 경찰청장과 복지부 장관이 협의해야 한다”라며 “동향과 위험 요인을 파악해야 사례 발굴도 할 텐데 인프라를 우선 구축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했다.  백종우 교수는 “여러 부처가 달라붙어야 예방과 대책을 말할 수 있다”라며 “총리실 이상에서 나서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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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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