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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왜 류지현 대신 염경엽을 선택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지난 6일 "염경엽(54) 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전임 류지현(50) 감독과의 결별을 공식화한 지 이틀 만이다.

SK 감독 시절의 염경엽 감독. 연합뉴스

SK 감독 시절의 염경엽 감독. 연합뉴스

염 신임 감독의 계약 기간은 3년, 계약 총액은 21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각 5억원, 옵션 3억원)이다. 류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된 뒤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 유력한 차기 사령탑으로 거론됐는데, LG는 소문과 다른 선택을 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KBO 총재 출신인 구본능 구단주 대행의 의중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새 감독 선임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다. 전임 류 감독은 올해 LG 창단 후 한 시즌 최다승(87승)을 올리면서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3위 키움 히어로즈에 1승 3패로 져 20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 도전에 실패했다. 그 장면에 크게 실망한 구 구단주대행이 감독을 바꾸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KBO리그 최고 인기 구단 LG의 감독 자리를 둘러싼 하마평은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 과정에서 염경엽 감독이 차기 사령탑으로 확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가 LG 구단의 강한 부인으로 정정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LG는 "염경엽 전 감독에게 1군 감독이 아니라 퓨처스(2군) 총괄 코디네이터 자리를 제안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SK 감독 취임식에서 포부를 밝히던 염경엽 감독. 연합뉴스

SK 감독 취임식에서 포부를 밝히던 염경엽 감독. 연합뉴스

그 후 선동열 감독이 LG 지휘봉을 잡을 거라는 '설'이 기정사실화됐다. LG는 이번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다 결국 염 감독이 사령탑에 오르게 되자 야구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선 감독은 오히려 "LG로부터 그 어떤 구체적인 제안도 받은 적 없다"며 난감해했다.

LG는 2002년 이후 20년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28년 전인 1994년이 마지막이다. 오랫동안 우승에 목말라했고, 지난 시즌에는 노골적으로 '윈 나우'를 외치면서 우승을 기원하는 세리머니를 만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언젠가부터 더그아웃 전체에 '우승을 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조바심이 자리 잡았다. 정규시즌 2~3위를 해도 1위가 아니라서 아쉽고, 정규시즌 87승을 올린 감독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하자 팀을 떠났다. 구단 수뇌부부터 팬들까지 오직 '우승'만을 외치니, 현장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더그아웃의 수장인 감독은 부담이 더 크다. LG의 우승이 끊기면서 감독들의 재계약 소식도 끊긴 탓이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통합 4연패를 일군 류중일 감독조차 세 시즌(2018~202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하자 재계약에 실패했다. 류중일 감독을 떠나보낸 LG의 다음 선택은 반대로 27년간 LG에 선수와 지도자로 몸담았던 프랜차이스 스타 류지현이었다. 마지막으로 우승하던 1994년 신인왕에 오른 '신바람 야구'의 상징, 누구보다 LG의 내부사정과 팀 방향성을 잘 아는 감독. 그러나 류지현 감독 역시 '두 번째 사인'은 하지 못하고 29년 만에 작별인사를 전했다.

넥센 감독 시절의 염경엽 감독. 중앙포토

넥센 감독 시절의 염경엽 감독. 중앙포토

아이러니하게도 염 감독은 프로 지휘봉을 잡고 우승한 적이 없다. 선수(1998·2000년 현대)와 단장(2018년 SK)으로 우승을 경험했을 뿐, 프로 사령탑으로는 정상에 서지 못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넥센(현 키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지만, 최고 성적은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었다. SK 감독이던 2019년엔 정규시즌 마지막 날 순위가 뒤집혀 2위로 밀린 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결국 2020년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건강 악화로 쓰러져 현장을 떠났다가 LG 감독으로 돌아왔다.

'우승 청부사'라는 거창한 기대를 받았던 이전 사령탑들과 달리, LG와 염경엽 감독은 오히려 '우승'이라는 간절한 목표의식을 공유하는 관계에 가깝다. 구 구단주대행은 '우승해본 감독'의 경험보다 '우승 못 해본 감독'의 절실함 쪽에 기대를 걸기로 한 듯하다. 염 감독은 계약 발표 뒤 "LG 감독이 돼 영광이다. 지난 실패를 통해 많이 반성하고 공부했다"며 "이번 포스트시즌을 통해 LG 팬들이 어떤 경기와 성적을 원하는지 확실히 느꼈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감독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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