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시 골목에서는 주변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위급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도 어려웠다. 당시 인파 속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라는 어느 경찰관 외침도 음악 소리에 묻혔다. 이런 가운데 용산구의회가 조례를 만들어 일반음식점에서도 춤추는 것을 허용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한몫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용산구와 용산구의회 등에 따르면 용산구의회는 지난 4월 ‘객석에서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의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만들어 시행중이다. 조례에 따르면 일반음식점에서 손님이 객석 등에서 춤을 추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은 고객이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탁자, 의자 등을 설치한 곳을 말한다. 조리장·화장실·창고·출입구·비상구·무대 시설 등은 제외한다.
소음 기준 45~65db 준수해야
조례에는 춤이 허용된 일반음식점 영업자는 소음 등으로 인해 주변 주민 생활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입장인원은 객석 면적 1제곱미터당 1명으로 제한하도록 했다. 소음은 ‘소음ㆍ진동관리법 제21조에서 정한 생활소음ㆍ진동의 규제기준을 준수한다’고 돼 있다. 이 법에 따른 생활 속 소음 기준은 45~65db이다. 냉장고 소리가 40db, 번잡한 길거리 소음이 70db 수준이다.
이태원 음식점에서 춤추는 게 가능해지면서 업소 이곳저곳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로 173-7번지 골목길은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이어진다. 세계음식거리에는 다수의 클럽과 바(bar)가 길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들 클럽·바 중 상당수는 일반음식점·소매점으로 업종 허가를 받았다. 춤 허용업소 24곳 중 18곳이 참사가 난 중심 대로에 몰렸다.
코로나19 이후 상권 활성화 위해 조례 제정
용산구청은 핼러윈 이틀 전까지 현장점검을 했다고 밝혔지만, 참사 당일 상황을 보면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곳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춤 허용을 받지도 않은 일부 무허가 업소들까지 생기며 혼란을 키웠다.
이와 관련해서 한 경찰관은 내부 통신망을 통해 ‘용산구청이 관광특구 명목으로 일반음식점의 춤 허용 조례를 통과시킨 탓에 거리에 음악 소리가 너무 컸고, 단속도 불가능했다’고 했다.
용산구의회 측은 이런 조례를 만든 것은 지난해부터 이태원 상인들이 춤 허용업소 지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침체한 이태원 상권을 활성화하려면 춤 허용업소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포·서대문·광진구도 유사 조례
이와 관련 상인 김모씨는 “이태원 상권 특성상 핼러윈·세계문화 축제 등 전 세계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상인 의지와 상관없이 고객이 춤만 춰도 불가피하게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며 “춤 허용 조례를 제정하면 손님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춤 허용 업소 지정을 하면서 안전 대책도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한편 용산구 이외에도 서울 마포·서대문·광진구가 일반음식점에 춤을 허용했다. 마포구에는 홍익대 앞, 서대문구에는 연세대 앞, 광진구에는 건국대 앞에 대형 유흥가가 자리 잡았다. 또 부산 진구, 광주 서구·북구, 울산 중구 등 몇몇 지자체가 이와 유사한 조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