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컴백하는 기술관료 전성시대, 의미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신중국에서 엘리트를 구분 짓는 두 가지 부류로 홍(紅)과 전(專)이 있다. ‘홍’은 ‘붉다’는 뜻 그대로 혁명가임을 전면에 내세우는 혁명 간부다. ‘전’은 전문가라는 의미로 학계와 업계에서 전문성을 획득한 기술 관료를 말한다.

제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은 ‘지식분자’를 싫어했다. 일궁이백(一窮二白·첫째 가난하고 둘째 지식이 없다)의 일반 인민들이야말로 혁명 사상을 주입할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반우파투쟁(1957~59)과 문화대혁명(1966~76) 때처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지식인을 박해했다.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자행한 진시황을 연상케 했다.

당연히 마오 시대의 엘리트들은 대장정과 국공내전을 경험한, 혁명 정신으로 똘똘 뭉친 동지들이었다. 2세대 엘리트로 꼽히는 덩샤오핑(鄧小平)과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차오스(喬石)도 그런 부류였다.

왼쪽부터 덩샤오핑(鄧小平),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출처 바이두바이커]

왼쪽부터 덩샤오핑(鄧小平),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출처 바이두바이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천명하며 경제 성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혁명의 열정은 높지만 전문성은 부족한 기존 간부들 대신 자연과학·공학·경제학 등 실용 분야에서 대학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관련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당 간부로 중용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시점은 덩샤오핑이 당을 완전히 장악한 1982년 공산당 제12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부터였다.

1989~2002년 당 총서기를 지낸 장쩌민(江澤民)은 상하이 교통대학 전기기계과를 졸업하고 자동차·전기 등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2년 16차,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후진타오(胡錦濤)는 칭화대 수리공정과를 나와 수력 분야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들 기술 관료들은 중국 산업계 각 분야에서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빈부격차, 환경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안정이 요구되자 일찍부터 당 간부로 경력을 쌓은 일반 관료들이 점차 엘리트로 충원되기 시작한다. 기존 기술 관료들이 이공계·경제 분야에서 전문 기술을 습득한 ‘스페셜리스트’라면 새로운 일반 관료 집단은 인문·사회 등 문과 계통을 전공한 ‘제너럴리스트’로 볼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선출한 200여 명의 중앙위원이 정관계 요직을 독차지하고 이끌어가는 나라다. 1992년 14차 당대회 때 선출된 중앙위원과 2007년 17차 당대회를 비교하면 기술 관료 출신 비중은 43.7%에서 점차 줄어들어 36.9%로 내려갔다. 반면 일반 관료 출신은 12.8%에서 31.6%로 가파르게 상승했다.(주장환, “제17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 기술 관료의 쇠퇴와 ‘일반 관료’의 부상,” 2009)

이런 추세가 이후 시진핑(習近平) 집권기 들어 다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열린 20차 당대회에서 그 추세가 뚜렷하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에 새로 선출된 중앙위원 205명 중 기술 관료 비율은 49.5%에 달했다. 중앙위원 중에서도 핵심인 중앙정치국(24명)에 새로 입성한 13명 중 최소 6명이 과학·기술 분야 이력 보유자다. 우주항공 전문가인 마싱루이(馬興瑞) 신장위구르자치구 당서기와 위안자쥔(袁家軍) 저장성 당서기, 중국 최대 방위산업체 중국북방공업집단유한공사의 최고경영자 출신인 장궈칭(張國淸) 랴오닝성 당서기 등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기술관료의 약진은 5년 전 19차 당대회 때에도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중화학·기계·전자 분야가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우주항공과 방위산업, 원자력, 환경, 공중보건 관련 첨단 분야 전문가들이 눈에 띈다. 특히 마싱루이와 위안자쥔은 ‘항천방(航天幫·항공우주 전문가 집단)’으로 불리고 있다. 또 다른 정치국 위원 인리(尹力) 푸젠성 당서기는 공공 의료 전문가, 천지닝(陳吉寧) 베이징시 시장은 환경 전문가다.

기술관료 그룹의 약진에 대해 조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의 관건이 누가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느냐이기 때문”이라며 “전시(戰時) 내각이라는 표현까지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전문가를 인용해 과학 기술 관료의 약진에는 과학 기술 자립을 원하는 시진핑 주석의 뜻도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초유의 집권 3기를 시작하는 시진핑에겐 경제와 과학 기술 각 분야에서 보다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장기집권의 명분을 세울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로 지휘부를 구성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정치보다는 통치에 집중하겠다는 모양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