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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서 '마약 초승달' 사라졌다"…겁 없는 아이들 대놓고 약 빤다

중앙일보

입력

마약왕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넷플릭스

마약왕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넷플릭스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는 ‘골든 트라이앵글(태국·미얀마·라오스)’이나 '황금의 초승달(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로 불린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마약으로 악명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경찰 출신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는 “과거 한국의 초승달 지역은 신촌·이태원·강남이었으나 이제는 사라졌다”며 “대도시 유흥가뿐 아니라 소도시나 시골, 학교 주변으로도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졌다”고 말했다. 국민 일상에 마약이 깊숙이 파고들었단 의미다.

한국에서 사라진 마약 초승달 지역, 왜

경찰 출신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 한국행정개혁학회 마약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사진 윤흥희 교수

경찰 출신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 한국행정개혁학회 마약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사진 윤흥희 교수

윤 교수는 30년 가까운 경찰 인생 대부분을 마약 사범을 쫓는데 쓴 ‘마약 수사 베테랑’으로 꼽힌다. 2004년 서울지방경찰청(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창설 멤버로 서울청 마수대에서만 12년을 일했다. 지난 27일 중앙일보와 만난 윤 교수는 “지금에서야 마약 범죄가 청소년 범죄로 주목받고 경찰이 관심을 가지지만 2001~2002년부터 이미 시작됐던 범죄”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서울 청량리경찰서(현 동대문경찰서) 마약반장 시절인 2006년 ‘청소년 약물남용 원인·실태 및 예방대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한성대 석사 부분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약물에 빠져든 청소년 문제는 20년 전에도 심각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범죄 양상이 그때와는 달라졌다. 윤 교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부유층 10대들이 부탄가스나 본드를 흡입하던 게 사회적 문제였다면 이제는 10대라면 누구나 마약에 쉽게 접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0대 마약 사범은 증가 추세다. 지난 5월 발표된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1년 19세 이하 마약류 사범은 450명으로 전년(313명) 대비 43.8% 늘어났다. 4년 전인 2017년(119명)과 비교하면 278.2% 급증했다. 올해 1~8월 10대 마약류 사범은 372명으로, 28.57배로 예측되는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검거 인원 대비 실제 총범죄자 수를 계산하는 배수)을 곱하면 10대 마약 사범이 1만628명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윤 교수는 “텔레그램이나 다크웹 등 인터넷 발달로 10대 마약은 지속해서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넷으로 다 아는 10대, 교육 중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윤 교수에 따르면 인편이나 배달과 같은 마약 거래 수법은 이제 구식으로 통한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마약 사범들은 서로를 믿지 않아 현장 직거래를 선호했다고 한다. 경찰도 그때를 노리고 ‘통제배달’ 등에 나섰다. 통제배달은 마약류가 숨겨진 화물을 목적지로 배달되도록 한 뒤 현장에서 수취인과 공범 등을 붙잡는 특수 수사기법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텔레그램 등을 통해 접선한 뒤 서로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마약을 사고파는 방법(던지기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 주 결제수단은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다. 윤 교수는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던지기 수법이 뭔지까지도 다 알고 있다”며 “누구나 마약을 살 수 있는데 검거는 어려워진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가 느끼는 최근 마약 범죄의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상화다. 과거엔 집이나 여관 등에서 마약을 은밀하게 투약했다면 이제는 카페·길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투약·흡입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마약 사범 연령대가 낮아진 것과 연관이 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쓰면 이렇다. “아이들이 겁이 없는 거죠.”

최근 마약 범죄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하면서 경찰·검찰 등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관련 정책은 교육과 예방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마약 증상을 느끼기 위해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10~20알을 입에 털어 넣는 10대 청소년의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뉴스1=AFP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뉴스1=AFP

국내에서 430여 가지가 넘게 유통되는 마약 외에도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 등도 청소년을 유혹한다. 펜타닐은 최근 ‘10대들의 마약’으로 불린다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10대 미성년자가 받아간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는 2020년 624건으로 파악됐다. 2019년 22건에서 1년 만에 28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5월 경남에서는 펜타닐 패치를 다량으로 처방받아 투약·판매한 10대 4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윤 교수는 “단속·처벌 등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도 학생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경구가 마약 범죄 예방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마약 수요를 차단하는 것만큼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처럼 가정과 학교, 지자체에서 나이와 수준에 맞는 약물 사용이나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대로 간다면 청소년이 마약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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