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회원 2300만 중고명품 플랫폼…'보물찾기' 배우는 MZ경제학교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고 명품 거래가 주목받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의 연이은 가격 인상과 금리 인상 등의 이유도 있지만,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와 맞아 떨어진 덕이다.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 건에서 알 수 있듯, 대기업들의 굵직한 투자 이슈가 이어지며 큰돈이 쏠리는 것도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찌감치 이 시장에 눈을 뜬 프랑스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이하 베스티에르)의 창립자 패니 모아존트와 소피 헤르산에게는 시장에 대한 이 같은 뜨거운 관심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리셀(재판매) 회사와의 협업은 원치 않는다. 세련돼 보이지 않는다"며 숱한 명품 브랜드에게 거절당하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역으로 협업 러브콜을 보내오는 곳이 생겨날 정도다.

베스티에르 공동 창립자인 패니 모아존트(오른쪽)와 소피 헤르산이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을 방문했을 당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정 기자

베스티에르 공동 창립자인 패니 모아존트(오른쪽)와 소피 헤르산이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을 방문했을 당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정 기자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베스티에르는 뉴욕·홍콩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23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에도 직진출했다. 최근 중앙일보와 만난 패니 창립자는 "낭비를 없애고 싶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포부를 갖고 13년 전 창업을 했다"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현재는 순환 경제,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중고 명품 거래)시장에 동참하는 기업과 소비자가 많아진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고 명품 플랫폼은 작은 경제 학교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을 찾는 가장 큰 목적은 '가격 접근성'이다. 고가의 명품을 합리적 가격대에 구매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명품 진입 장벽을 낮추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소피 헤르산은 중고 명품 시장 활황 이유를 다른 각도로 해석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길 원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Z세대)에게 중고 거래 플랫폼은 '보물찾기(treasure hunting)'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며 "관심 있는 품목, 희귀 아이템을 '득템'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패니 모아존트는 10대인 자신의 두 딸 이야기를 덧붙이며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두 딸이 각자 옷장을 정리하면서 자신에게는 쓰임을 다한 옷을 중고 플랫폼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일단 깔끔하게 옷장이 비워지고 '적게 소유한다' 느낌이 드는 데서 1차 만족감을 느꼈고, 이 옷을 팔아서 이윤이 생기면 거기서 또 재미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이상 안 쓰는 본인 제품을 내놔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해야 자원이 순환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됐다. (중고 명품 플랫폼은) 수요·공급, 환경 이슈를 고민하는 일종의 작은 학교다."

깐깐한 정품 인증 자신감, 럭셔리 브랜드 협업 구애 늘어나 

중고 명품 거래 시장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는 핵심은 '신뢰'다. 가품(假品) 이슈는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이 철저히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패니 모아존트는 깐깐한 검수 인력, 시스템을 강조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2012년 가품 반대 헌장(anti-counterfeiting charter)을 발표하기도 했다"며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철저히 교육받은 전문가들이 정품 검수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베스티에르는 프랑스 투르쿠앵, 미국 뉴욕, 홍콩, 영국 런던에 이어 서울에 검수센터를 세웠다.

정품 인증에 대한 신뢰도가 축적된 덕분인지, 최근엔 적잖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베스티에르와의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초엔 알렉산더 맥퀸이 베스티에르와 협업 관계를 구축했다. 브랜드가 직접 자사 고객들에게 되팔고자 하는 제품이 있는지 확인한 후 제품을 직접 감정하고, 적격 판정이 나면 이를 사들인다. 베스티에르는 맥퀸으로부터 이 중고 상품들을 전달받아 관심 있는 구매 희망자에게 판매한다. 베스티에르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 '브랜드 승인(brand approved)'이라 표시된 것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도 베스티에르 플랫폼을 지렛대 삼아 자사 상품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순환돼 전해지는 진짜 '순환패션'의 가치를 손쉽게 실현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들은 내년 1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한 곳의 협업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베스티에르 공동 창립자인 패니 모아존트(오른쪽)와 소피 헤르산. 사진=베스티에르 콜렉티브

베스티에르 공동 창립자인 패니 모아존트(오른쪽)와 소피 헤르산. 사진=베스티에르 콜렉티브

누구든 '패션 액티비스트(activist·활동가)'가 될 수 있다

베스티에르는 2020년부터 SMI(Sustainable Markets Initiative)에 참여하고 있다. SMI는 2020년 세계경제포럼 이후 영국 찰스 3세 국왕 주관으로 출범한 세계 기후변화 대응 이니셔티브(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이다. 민간 기업들이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법을 고민하고 실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별개로 패니, 소피 공동 창업자는 틈나는 대로 옷이 쓰레기가 된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자신들이 왜 이 사업을 해야하는지 결의를 다진다. 최근 두 공동 창업자는 아프리카 가나의 쓰레기 산을 방문했다. 가나의 상인들은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헌 옷을 무게로 달아 현지 시장에 내다 파는데, 그래도 팔리지 않는 옷은 모두 인근 강둑에 그대로 버린다. 두 사람은 "안타까운 현실을 직접 목격하며 이 사업을 왜 더 키워야 하는지 확신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패니 모아존트는 "누구나 패션 액티비스트가 될 수 있다"며 "중고 거래 참여자가 되는 것은 본인을 윤택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 멋진 일을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앞으로의 목표는 베스티에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일이다. 패니 모아존트는 "가령 '이 가방 어디서 샀어?' 라고 물으면 '구찌야' '샤넬이야' 같은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베스티에르에서 샀어'라고 사용자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라며 "중고 거래에 대한 선한 자극과 동기 부여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