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골프장 지하 비밀공간…축구장 5개 크기 '1749억 짜리 빗물그릇'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현지시각) 오전 9시 스페인 마드리드 컨트리클럽(CC). DP월드투어(유러피언투어) 골프 대회 중 하나인 스페인 마드리드오픈이 열리는 18홀 골프장이다. 밖에서 보면 드넓은 푸른 골프장과 테니스장·하키장이 펼쳐져 있지만, 지하엔 비밀 공간이 숨어 있다. 유럽연합(EU) 최대 규모의 빗물 터널인 아로요프레스노다. 

마드리드시가 지난 2008년 마드리드시 북쪽 컨트리클럽 하부에 설치한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마드리드시가 지난 2008년 마드리드시 북쪽 컨트리클럽 하부에 설치한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빗물과 하수 40만㎥까지 채운다  

아로요프레스노 빗물 저류 배수시설은 마드리드시가 2008년 지었다.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비가 내리면 우선 이곳에 빗물과 하수를 저장한다. 축구장 5개를 합친 ‘대형 물그릇’은 40만㎥까지 채울 수 있다. 이후 직경 6.7m, 길이 3㎞의 ‘집수관’을 통해 빗물을 강하류 저류조인 ‘부타케탱크(Butarquetank)’로 보낸다. 여기서 강으로 방류된다.

마르타 로페스 산체스 마드리드시 하수도과장은 “집중호우로 집수관에 모이는 빗물이 급증하면, 아로요프레스노의 정수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많은 유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며 “이에 하수·빗물을 일단 여기 저장했다가 천천히 정수한 물을 만사나레스강으로 방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방류할 경우 하수와 빗물을 1대 17의 비율로 섞어서 방류하기 때문에 강물의 오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은 지하철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지름 6.7m 크기의 빗물관이 지하에 존재한다.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스페인 마드리드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은 지하철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지름 6.7m 크기의 빗물관이 지하에 존재한다.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22년 전 대규모 홍수 피해 이후 건설논의 

마드리드 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마드리드시는 지난 2000년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지난 8월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린 이후 대심도 빗물 터널 건설 논의가 활발해진 것과 판박이다. 

마침 마드리드시는 스페인 외곽을 둥그렇게 감싼 32.5㎞ 길이의 M30 고속도로의 남서쪽 일부 구간(8㎞)을 지하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이와 맞물려 마드리드시는 빗물 터널 건설을 추진했다. 현재 시(市) 외곽의 만사나레스강을 따라 36개의 크고 작은 빗물 저류조 등이 설치돼 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올림픽수영장 391개를 합친 규모다. 132만㎥까지 저류할 수 있다.

비싼 건설비용, 하지만 안전 중요 

물론 이 과정에서 마드리드시 역시 찬·반 논란을 겪었다. 빗물 저류 배수 시설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건설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아로요프레스노를 건설하기 위해서 마드리드시는 1억2400만 유로(1747억원)를 투입했다. 이 비용은 국비 지원 없이 전액 마드리드 시비로 충당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마르타 로페스 산체스 마드리드시 하수도과장(맨 오른쪽)에게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마르타 로페스 산체스 마드리드시 하수도과장(맨 오른쪽)에게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하지만 결국 ‘안전’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빗물 터널 착공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르타 로페스 산체스 하수도과장은 “홍수 예방과 만사나레스강의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아로요프레스노 빗물 저류 배수시설이 필요하다는 시민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아로요프레스노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집중호우 대비 효과 톡톡 

덕분에 마드리드시는 도심 침수를 예방하고 있다. 마르타 로페스 산체스 과장은 “마드리드는 평소 강우량이 적다가 갑자기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데, 1년에 두 차례 정도 폭우가 내려 빗물 터널이 꽉 찬다”며 “이때마다 홍수를 방지하고 오염된 하수 방류를 막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집수관은 서울시가 설치하려고 하는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지난 8월 시간당 100㎜ 이상의 집중호우 사태를 경험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10년 만에 방재성능목표를 상향 조정하면서 대심도 빗물 터널 설치를 발표했다. 침수에 취약한 강남역·광화문·도림천 일대 3곳에 2027년까지 대심도 빗물 배수시설을 우선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아로요프레스노 빗물저류배수시설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 마드리드(스페인)=문희철 기자

서울 대심도 빗물터널 용역진행한다 

서울시는 현재 대심도 빗물 터널 설치를 위한 첫 단계인 ‘기본계획용역’ 공고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2023년 상반기까지 용역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시장은 “최근 10년간 한국 강수 패턴이 급변했는데, 마드리드시가 13년 전부터 홍수 예방과 환경 보호를 위해 도입한 아로요프레스노는 서울이 벤치마킹하기 굉장히 적절한 사례”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