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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는 왜 존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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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한국의 넘버 1 스포츠는 뭔가요.”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헷갈린다. 프로야구가 제1의 스포츠인 것 같기도 한데, 축구도 만만찮다. 특히 국가대항전인 A매치가 열리면 축구는 넘버1 스포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최근엔 골프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30세대의 유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골프 인구가 크게 늘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골프 인구는 564만 명으로 나타났다. 2019년 470만 명에서 94만 명이나 늘어났다. 지난해 전국 505개 골프장을 이용한 내장객은 총 5056만 명이나 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지난해 관중 수가 122만 명으로 급감한 프로야구와는 대조를 이룬다.

골프실력·산업규모는 세계 일류
여자골프협회 폐쇄적 운영 유감
오만한 자세 계속되면 팬들 떠나

지난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BMW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리디아 고. KLPGA는 이 대회를 ‘비공인 대회’로 규정해 국내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지난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BMW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리디아 고. KLPGA는 이 대회를 ‘비공인 대회’로 규정해 국내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골프 클럽 및 의류 제조업체도 덩달아 호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타이틀리스트 골프공과 클럽을 만드는 아쿠쉬네트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3688억원이다. 이 회사는 2011년 국내 기업인 휠라코리아가 사들였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엄연한 한국 기업이다.

골프의류 시장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국내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6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미국 골프의류 시장 규모는 약 1조3000억원, 일본은 9400억원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한국의 골퍼들이 패션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액수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골프 할 때 옷을 가장 잘 차려입는 나라가 한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니다. 스포츠와 사교가 결합한 한국의 독특한 골프 문화가 낳은 결과다.

프로골퍼들의 실력도 세계 정상급으로 발전했다. 1998년 박세리가 활약하던 시절엔 한국 선수들이 미국 무대에서 1승만 거둬도 빅뉴스였다. 그 당시 골프 전문가들은 “여자는 세계 무대에서 통해도 남자는 안된다”고 했다. 남자는 외국 선수보다 체구가 작고, 거리가 짧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20여 년이 지난 2022년.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진영은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 남자 골퍼들도 세계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체격은 물론 실력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스무살 김주형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톰 킴’으로 불리는 그는 실력은 물론 푸근한 미소와 둥글둥글한 캐릭터로 미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데 골퍼들의 실력이나 산업 규모는 세계 정상급인데 골프협회의 행정은 여전히 삼류 수준이다. 글로벌 시대인데 국제화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일방적인 결정이 그 대표적인 예다. KLPGA는 지난주 강원도 평창에서 골프 대회를 열었다. 같은 기간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BMW챔피언십에 대항하기 위해 대회를 급조했다. LPGA투어 BMW챔피언십을 ‘비공인’ 대회로 규정하면서 국내 선수들이 이 대회에 참가할 경우 10경기 출전정지 처분과 함께 최대 1억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내 여자골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기에 LPGA와 맞붙어도 자신 있다는 오만함이다.

지난해 BMW챔피언십에서 LPGA 고진영과 KLPGA 임희정이 멋진 샷 대결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골프 팬 입장에선 아쉽기 짝이 없다. 국내 선수와 LPGA 스타들의 샷 대결 기회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과거 안시현과 고진영 등이 그랬듯이 국내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직행할 기회도 원천 봉쇄해버렸다.

그동안 KLPGA와 LPGA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자골프 발전을 이끌어왔다. KLPGA는 LPGA에 유망주를 공급하는 요람 역할을 했고, LPGA는 국내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KLPGA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결정 탓에 더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여자 골프의 생태계를 스스로 무너뜨려 버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KLPGA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여자 골프의 인기가 대단하지만, 그 인기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팬들이 외면하면 투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기자기한 여자 골프 대신 호쾌한 장타를 자랑하는 남자 골프가 인기를 되찾는 건 시간문제다. (월드 스타로 성장한 남자 골프 김주형을 보라) 지금과 같은 폐쇄적인 자세로는 선수와 골프 팬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선수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KLPGA의 행정은 오히려 뒷걸음을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