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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회사채도 안 팔리는데…은행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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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해 4분기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 문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회사채와 단기자금 시장에 찬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은행 대출 문마저 좁아지면서 기업의 ‘돈맥경화’ 우려도 커지게 됐다. 은행의 기업 대출은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대기업까지 은행 대출 창구에 몰리면서다.

26일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 행태 설문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올해 4분기 기업에 대한 대출태도 지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3을 기록했다. 해당 지수가 마이너스(-)일 경우 대출 심사를 엄격히 하고, 대출한도를 줄이는 등 대출에 대한 문턱을 높인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는 204개 금융사의 여신 총괄책임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는 올해 2분기 이후 악화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는 대기업(-6), 중소기업(-3) 등이다. 한은은 “대출건전성 관리 필요성과 불확실한 대내외 경기 상황 등으로 전분기에 이어 대출태도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 중 하나인 회사채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회사채는 2조1000억원어치의 순상환이 이뤄져 발행보다 상환이 많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률(미매각금액/전체 발행금액)은 20.5%를 기록했다. 1년 전 미매각률은 0.2%에 불과했다. 특히 10월 이후에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며 최고 신용등급(AAA)인 한전채마저 미매각이 속출하고 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AA- 등급의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전날보다 0.025%포인트 오른 연 5.553%로 마쳤다. BBB- 등급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도 11.404%로 0.022%포인트 올랐다.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는 0.06%포인트 오른 4.51%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전력공사는 2년 만기 회사채 2000억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물량을 다 채우지 못하고 600억원어치를 발행하는 데 그쳤다. 발행 금리는 5.9%로 6%대에 육박한다. 이는 2008년 11월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다. 올해 한전채 발행 물량은 23조4900억원에 달해 회사채 시장 경색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으며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은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27조90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대출 증가액(7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대기업 대출은 9월에만 4조7000억원이 늘었다.

은행은 4분기에도 기업 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대출수요 지수는 대기업(6)과 중소기업(3) 등으로 조사됐다. 대출수요 지수가 플러스(+) 값을 나타낼 경우 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뜻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상기에 대출이 어려워지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며 “대기업은 신규 투자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은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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