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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샌즈베이 만든 거장…걸작으로 꼽은 "범죄 같은 건물"

중앙일보

입력

모쉐 사프디. 사프디 아커텍트 홈페이지 캡처

모쉐 사프디. 사프디 아커텍트 홈페이지 캡처

 “모쉐 사프디는 한때 미래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결국 그는 미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3일(현지시간) 세계적인 건축가 모쉐 사프디(84)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샌즈 베이 리조트와 창이 공항을 설계한 건축 거장 사프디 역시 “70~80년대엔 내 아이디어가 무시당했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시대 주류였던 포스트 모더니즘을 적대시했다”면서다. 가디언이 최근 회고록 ‘벽이 말할 수 있다면’을 출간한 사프디를 만났다.

데뷔작에 "범죄 같다" 혹평 

사프디는 수십 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자신의 데뷔작인 ‘해비타트 67’을 꼽는다. 1967년 몬트리올 세계엑스포에서 공개한 ‘해비타트 67’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지은 이 공공주택은 자신의 고향인 지중해 언덕마을을 모티브로 한 모듈형 주택이다. 모듈을 불규칙하게 쌓은 이 아파트는 각 세대가 테라스와 정원을 품고 있다. 사프디는 “기존의 공공주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며 “주민은 새장에 갇혀있는 새 같았고, 영혼을 짓밟히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건축의 거장 모쉐 사프디가 걸작으로 꼽는 데뷔작 '해비타트67. 해비타트67 홈페이지 캡처

건축의 거장 모쉐 사프디가 걸작으로 꼽는 데뷔작 '해비타트67. 해비타트67 홈페이지 캡처

사프디는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염소를 키우고 벌 양봉을 하며 자랐던 그는 15살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캐나다로 이주했다. 필라델피아 출신 유명 건축가 루이스 칸의 사무실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25세 이민 1.5세대로 평생 건물을 설계할 기회는 없었다”며 “(기존의) 공공주택은 마치 새장에 갇힌, 영혼을 짓밟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토부 장관은 급진성을 이유로 규모를 3분의1로 줄였고, 어떤 비평가는 “범죄 같은 극단적 건축”이라고 혹평했다.

그 작품이 바로 당시 엑스포의 히트작이었던 ‘해비타트 67’이다. 그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사프디는 뉴스위크의 표지 모델이 됐고, 사프디는 그 모델이 세계적인 모델이 되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분쟁으로 황폐해진 예루살렘 마밀라 지구 등 이스라엘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행했다. 벤구리온 국제공항과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이다. 그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 큰 좌절과 고통을 야기한다”면서도 “그 국가에 대한 보이콧은 어리석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비주류 맴돌다 걸작 탄생

마리나 샌즈베이 레이저 쇼 스펙트라. 백종현 기자

마리나 샌즈베이 레이저 쇼 스펙트라. 백종현 기자

그는 북미 지역에서도 캐나다 국립미술관(1988)과 밴쿠버 공공도서관(1995) 등을 비롯한 문화 명소를 설계했지만, 스스로 건축계의 비주류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70~80년대에는 내 아이디어가 무시당했다”며 “당시 인기를 끌었던 포스트 모더니즘에 적대적이었고, 나는 그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주류이기를 거부했던 그의 작품이 바로 마리나 샌즈 베이(2011)와 창이 공항(2019) 등이다. 그는 “그땐 도시의 아이콘이 될 것이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그의 이상을 실현한 ‘해비타트 67’과 싱가포르에서 상업적 성공을 관통하는 비결로 ‘건축과 자연의 조화’를 꼽았다. 비행기에 탑승하거나 공항에서 쇼핑하지 않더라도 창이 공항에 가면 그 공항의 정원과 폭포를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이 바로 그가 추구했던 원칙이다. 그는 한국인 며느리 사랑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11년 전 방한 당시 “며느리가 아들과 결혼할 때 한국에 꼭 가보겠노라고 약속했는데, 드디어 약속을 지키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겸 극작가인 MJ 강이 그의 며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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