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스미나우’(Tax Me Now) 공동 설립자 마를렌 엥겔혼. 유튜브 캡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제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겁니다.”
글로벌 화학 기업 바스프(BASF)의 상속녀 마를렌 엥겔혼(30)의 꿈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중유럽 지역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 백만장자들의 모임 ‘택스미나우’(Tax Me Now)를 공동 설립했다. 재단을 설립해 기부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가 굳이 당국에 “세금을 부과하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엥겔혼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특권, 편협한 시각으로 보게 해”

마를렌 엥겔혼은 과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 ‘겔드’(Geld)를 출간했다. 사진 페이스북
엥겔혼은 약 150년 전 독일의 화학 회사 바스프를 창업한 프리드리히 엥겔혼 가문의 자손이다. 바스프의 자매회사인 진단검사 전문업체 베링거만하임은 1997년 제약회사 로슈가 110억 달러(약 15조 8000억원)에 인수했다. 이 가문이 기부에 인색한 건 아니다. 엥겔혼의 조부모님은 젊은 과학자 양성을 지원했고 종조부인 커트 엥겔혼도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엥겔혼은 그러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구조적 변화”라고 강조했다. “(기부를 위한) 또 다른 재단은 필요 없다”면서다.
엥겔혼은 오스트리아 빈 부촌의 고급 저택에서 자랐다. 프랑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평범하게 자랐다는 그는 “내가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작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 친구들은 왜 정원이 있는 큰 집에서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특권은 세계를 편협한 시각으로 보게 한다”고 꼬집었다. 빈 대학에 진학한 후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됐다. 성 소수자 인권단체 봉사에 나서고 경제적 불평등과 인종ㆍ성차별에도 관심을 가졌다.
90% 이상 기부…“100% 세금으로”

마를렌 엥겔혼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수백만 유로의 90%를 기부하겠다면서 ″100% 세금으로 내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 페이스북
그가 정해진 미래를 깨달은 건 지난 2020년 초 93번째 생일을 맞은 할머니를 만나러 스위스에 갔을 때다. 담당 회계사는 엥겔혼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수백만 유로를 물려받을 것”이라며 “돈은 그냥 편하게 쓰면 된다”고 말했다. 이 통보는 엥겔혼에게는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다 기부보다는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은 백만장자들과 교류하다가 지난해 중부 유럽 지역의 백만장자 모임인 ‘택스미나우’를 공동 설립했다. 이 단체는 상속세와 재산세 증세를 목적으로 한다. 유럽은 미국보다 상위 1%의 자산은 적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부가 대물림돼 그 자산은 더 널리 분산돼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선 억만장자 3분의1 정도가 재산을 상속하지만, 유럽은 절반 이상이다.
엥겔혼은 상속 재산의 90% 이상을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그러나 “100% 세금으로 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담아 처음으로 책 『겔드』(Geld)를 출간했고, 독일 언론에서도 그를 조명했다. 그러자 엥겔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도 쇄도했다. 이에 그는 “내가 돈을 받을 사람을 결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누구에게 돈을 줄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이 결정권을 조세 정의가 가져가 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