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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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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가녀장의 시대

가녀장의 시대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의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복희’는 작가인 슬아의 엄마다. 30대 작가 슬아는 출판사를 차리고 ‘모부’인 복희와 웅이를 고용한다. 그래서 제목이 가부장 아니고 가녀장의 시대다. 매번 뚝딱 마법 같은 밥상을 차려내는 엄마 복희는 ‘글쓰기의 세계가 얼마나 영롱한지 실감하며, 오랫동안 그 곁에서 고구마 맛탕이나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빠 웅이는 타투를 하고 싶은데 ‘아름다운 아저씨가 되는 건 쉽지 않으니 겸손한 귀여움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딸의 충고에 오른팔엔 청소기, 왼팔엔 대걸레를 새긴다. 가녀장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음에 대한 얘기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늠름한 아가씨, 아름다운 아저씨, 경이로운 아줌마”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