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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1호 김경훈 “대화 방해될까 평소엔 카메라 안 들고 다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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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경훈씨가 찍은 게이샤 사진. 2020년 로이터 올해의 사진에 선정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김경훈씨가 찍은 게이샤 사진. 2020년 로이터 올해의 사진에 선정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에세이 『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다산초당)를 펴낸 김경훈(48) 로이터 일본지국 기자는 평소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느라 앞사람과의 대화를 자꾸 끊게 되는 게 미안해서라고 했다.

그는 한국 국적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다. 2018년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떠나는 캐러밴(여행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2019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새 책  『인생은 …』은 그의 취재기와 생각을 담은 책이다. 지난 12일 만난 그는 “전 세계로 출장 다니는 삶을 살았는데, 코로나19로 출장이 막혀 일본에만 있었기 때문에 내 생각을 쓸 시간이 생겼다”고 했다.

현장을 찾아 사진에 담는 사진기자에게는 더욱 답답한 3년이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도 경기장 밖에서만 취재해야 했다. 팬데믹 기간 그는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일본 전통문화에 눈길을 돌렸다. 대면 공연을 하는 고급 요릿집의 원로 게이샤와 프로 스모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어린이 선수의 공간과 시간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다.

김경훈

김경훈

“주변에선 ‘게이샤가 얼마나 콧대가 높은데 사진 취재에 응하겠냐’며 불가능할 거라 했는데 웬걸, 이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오던데요.” 김씨는 “게이샤는 일본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집단인데, 공연 못 하는 코로나19 시기를 어떻게 버티고 있나 궁금했다”며 “80세가 넘는 원로 게이샤에게 메일로 의도를 설명했더니 ‘그런 의도라면 협조하겠다’고 답이 왔다”고 말했다. “사진 기자의 기본은 매너”라는 그는 ‘진심’이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했다.

섭외에 성공한 그는 원로 게이샤가 수제자들을 교육하는 장면, 분장 등 공연을 준비하는 장면, 집에서의 일상 등을 담았다. 일본 내에서도 거의 공개되지 않은 장면들이었다. 그는 “일본의 속살을 본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의 ‘퓰리처상 사진’은 2018년 11월 멕시코 티후아나 출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중남미 캐러밴이 몰려드는 현장을 취재하던 중, 최루탄을 피해 기저귀를 찬 두 아이를 손에 잡고 뛰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는 “그 가족과 현장에 있는 동안 꾸준히 연락하고 지냈다. 떠나기 전 꼭 한번 밥을 같이 먹고 싶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해서 KFC 치킨을 사 먹었다”고 돌이켰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9년 일간스포츠에 입사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로이터 사진기자로 서울·베이징·도쿄 등지에서 활동했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2011년 동일본 쓰나미 현장에선 동료 사진기자를 잃은 일도 겪었다. 재난과 불행을 기록하는 일을 하며 처음엔 현장의 슬픔에 전염되기도 했지만, “재난·재해 현장에서 사진기자는 특종을 쫓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장을 해결하는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을 깨달은 뒤 고민을 상당 부분 털어냈다고 했다.

그는 “내 사진 한장이 세상을 바꾸길 바라진 않는다.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면 내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며 “요즘은 양극화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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