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국민 둘로 쪼갠 그 말의 진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글 뉴스

정글 뉴스’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 □□□□ 쪽팔려서 어떡하나.”

[정글]

‘□’ 안에 들어갈 말은 뭘까요?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인가요, 아니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믄은(날리면의 서울 사투리)’인가요.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말 미국 뉴욕 행사에서 한 이 말은 한동안 국민을 둘로 쪼개놨습니다. ‘바이든’파는 ‘날리면’파를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했고, ‘날리면’파는 ‘바이든’파를 선동가라고 맞받아쳤죠.

당시 이 목소리를 음성학적으로 파형 분석하면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 겁니다. 그런데 주변 음악과 소음이 섞여서 그게 어려워졌죠. 윤 대통령이 실제로 뭐라고 했는지 실체를 규명하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본인의 해명? 다수의 의견? 우리 자신의 귀?

많은 분이 아마 자기 귀를 믿으실 텐데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감각기관은 100%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뇌과학적으로 보면 윤 대통령의 말은 사람에 따라 바이든으로 들리기도 하고 날리면으로 들리기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같은 소리인데 어떻게 사람마다 달리 들릴 수 있냐고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조금 찬찬히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모래반지빵야빵야

10여 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짤’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농구선수였던 표명일씨가 뭔가를 말하는 듯한 모습인데요. 이때 입 모양이 다양한 문장과 잘 어울려 상당히 화제가 됐죠.

‘뭘 반칙이지 말이 많아’ 혹은 ‘뭘 봐 이 XX놈아’라고 한 거로 추정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모래반지빵야빵야’ ‘물 마시지 말란 말야’ ‘모발이식 하란 말야’ 같은 말을 갖다 붙여도 잘 어울리죠.

물론 이 영상은 윤 대통령 사례와 달리 음성이 없습니다. 입 모양에 의존해서 음성을 추측해야 하죠. 소리가 들리면 사정이 달라질까요.

우리는 귀로 뭔가를 들으면 그게 100% 현실을 반영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귀와 뇌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보시죠.

‘얘니’이자 ‘로럴’인 소리

우리 귀가 현실을 완전히 반영 못 하는 첫번째 이유는 청력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선 아주 유명한 사회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소리 실험이죠.

어떻게 들리시나요? 얘니(Yanny)인가요, 로럴(Laurel)인가요.

얘니인 동시에 로럴인 소리가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예, 여기 있습니다. 이 소리는 얘니인 동시에 로럴인 소리죠.

사람마다 잘 듣는 주파수 영역대가 다른데 높은 주파수에 예민한 사람들은 이 소리를 얘니라고 듣습니다. 반면 낮은 주파수를 잘 듣는 사람은 이 소리를 로럴로 듣죠.

원래 이 녹음 파일은 로럴이라는 음성에 노이즈를 입힌 겁니다. 그런데 음성학적 분석을 하면 또 발음은 얘니에 가깝다는 판정이 나옵니다. 매우 이중적인 소리죠.

즉 세상엔 이도저도 다 되는 소리가 존재한다는 얘깁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그 소리는 얘니의 형태로 들리기도 하고 로럴처럼 들리기도 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두번째는 감각의 경합 때문입니다.

우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도 듣죠. 아까 ‘모래반지빵야빵야’ 사례에서 보셨듯이 눈은 청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엔 착시뿐 아니라 착청도 존재합니다. 듣는 것을 착각한다는 말이죠. 가장 유명한 착청 사례 중 하나가 바로 ‘거짓 입 모양’ 실험입니다.

실험 참여자는 눈으로 ‘가’를 발음하는 입 모양을 보면서 귀로 ‘바’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상하게도 실험자는 ‘바’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다’ 혹은 ‘하’처럼 ‘가’의 입 모양과 비슷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똑같은 소리를 들으면 아주 선명하게 ‘바’로 들리죠. 다시 눈을 뜨고 소리를 들으면 그 선명하던 ‘바’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다’ 비슷한 소리로 들립니다.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의 모순이 발생하면서 두 감각이 서로 겨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이때 시각 정보의 손을 들어줍니다. 귀로는 아무리 선명하게 ‘바’로 듣는다고 해도 눈이 ‘이건 절대 ‘바’라는 입 모양일리가 없어’라고 주장하면 뇌가 눈의 의견을 강하게 받아들이죠.

뇌과학 전문가인 박문호 박사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 여러 감각기관이 경합할 때 뇌라는 심판관은 그 중 시각 정보를 가장 우선해 판단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은 뇌과학에서도 옳은 명제”라고 말했습니다.

낮 동안 활동하는 인간이란 동물은 시각-청각의 경합에서 시각을 우선시하지만, 야행성인 쥐의 경우엔 청각이 우세하다고 하죠.

아는 대로 들린다

세번째 이유는 가이드라인 때문입니다.

보시다시피 청각은 시각에도 밀리고, 같은 소리도 사람마다 다르게 듣는 허약한 감각입니다. 그래서 사전 정보가 있다면 뇌는 청각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사전 정보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면서 마법처럼 들리지 않던 게 들리게 되죠.

이 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변조한 음성입니다.

이 소리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굉장한 추측력을 갖고 계신 겁니다.

변조하기 전 음성은 이렇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음성변조한 소리를 들어보세요. 확실히 뭐라고 하는지 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면 이상한 소리가 의미 있는 정보로 탈바꿈합니다. 희미한 것들에 형태가 잡히기 시작하죠.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핫 마이크 사건도 처음 보도될 때 ‘바이든’이라는 자막이 따라붙었습니다. 이때문에 불분명한 소리가 ‘바이든’이라고 들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만약에 윤 대통령이 정말로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낮말도 뇌가 듣고, 밤말도 뇌가 듣는다

듣는다는 행위의 주체는 귀가 아니라 뇌입니다. 사람이 소리를 듣는 메커니즘의 마지막 심판관 자리에 뇌가 앉아 있기 때문이죠.

소리는 공기의 진동입니다. 청각은 그 진동을 느낍니다. 공기가 고막을 떨게 하면, 그 떨림이 고막 뒤에 붙은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에 차례로 전달됩니다. 뼈 때리는 과정을 거쳐 이 진동은 달팽이관으로 이어집니다. 달팽이관은 액체로 채워져 있는데, 그 안에 있는 코르티 기관에 청각 세포가 모여 있죠. 이 털 달린 세포의 털이 떨리면서 전기신호가 만들어지고, 이를 뇌가 감지해 청각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뇌는 이 청각정보만 가지고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 정보, 감각 정보 등을 감각연합피질에 통합해 감각합니다. 듣는 것도 청각 정보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란 말이죠. 뇌가 이미 얻은 사전 정보, 경험으로 쌓은 데이터베이스, 개인 특유의 취향 같은 요소들도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듣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뇌는 과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예측한 '환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뇌의 작동 방식은 꽤나 합리적이라 우리가 보는 것과 실체 간의 모순이 적지만, 뇌가 과도하게 예측해버리면 환상에 가까운 헛것을 보게 되는 정신질환이 생긴다. 사진 케이스케 스즈키

뇌는 과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예측한 '환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뇌의 작동 방식은 꽤나 합리적이라 우리가 보는 것과 실체 간의 모순이 적지만, 뇌가 과도하게 예측해버리면 환상에 가까운 헛것을 보게 되는 정신질환이 생긴다. 사진 케이스케 스즈키

영국의 뇌과학자 아닐 세스는 “현실은 통제된 환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실제 세계는 뇌가 만들어낸 환각이란 거죠. 다만 그 환각이 아주 합리적이고 모순 없이 펼쳐질 뿐이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뇌과학적으로 보면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의 문제는 답은 둘 다 가능하다는 겁니다. 물론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은 실체가 분명히 있긴 합니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혹은 날리면 둘 중 하나만 말했겠죠.

하지만 그 실체라는 걸 확인하는 게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주관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개인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의 차이, 편향된 생각과 주관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은 같은 세계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계를 살면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듣습니다.

이 두 세계를 화해시키는 방법은 다른 사람 세계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와 똑같이 거짓 없는 현실 그 자체라는 걸 인정해야 하죠. 하지만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