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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게라도 정원 가꾸고 꾸미면, 삶의 질 올라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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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호 24면

POLITE SOCIETY

프랑스 보졸레지방 ‘샤토 피제이’의 정원. 대칭, 중심축, 균형과 같은 형식을 중요시한다.

프랑스 보졸레지방 ‘샤토 피제이’의 정원. 대칭, 중심축, 균형과 같은 형식을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는 ‘정원’을 의미하는 ‘가든(Garden)’은 여러 나라와 도시에서 다른 뜻으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숯불갈비집의 대명사로도 쓰인지 오래다. 뉴요커들에게 ‘가든’은 듣기만 해도 마음을 들뜨게 하는 단어다. 농구팀 닉스와 아이스하키팀 레인저스의 구장으로 사용되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정원의 한자 ‘원(園)’ 또한 동물원, 개인의 거실, 중식당 등 다양한 장소에 두루 사용된다. 그래서 지금도 실제 정원뿐 아니라 호텔, 경기장, 드라마 등 온갖 장소의 이름에 ‘가든’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정원이라는 공간이 부여하는 특별한 정서가 담겨있다.

정원 패턴, 파리 등 신도시 계획에 반영

영국 말로리 하우스의 정원. 우리가 사는 집에서 자연을 경험하고, 아름다움의 가치를 의식하는 삶의 질을 위해 정원을 꾸민다.

영국 말로리 하우스의 정원. 우리가 사는 집에서 자연을 경험하고, 아름다움의 가치를 의식하는 삶의 질을 위해 정원을 꾸민다.

역사적으로 정원은 동서양 모두에서 발달해왔다. 유럽에서는 신본주의의 중세가 끝나고 자연과 인문에 대한 관심이 부각된 시기에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절정기였던 16세기 말부터다. 대칭의 배치에 테라스를 만들고 조각상을 나열하는 등 고전건축 양식과 기하학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는 루이 14세와 15세 시절 정원의 형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건물을 중심으로 평평한 곳에 정원을 위치시키고 대칭, 중심축, 균형과 같은 형식을 중요시했다.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스타일의 조각상과 분수를 배치한 것도 특징이다.

기하학적 구조미가 중요하므로 연못이나 꽃밭을 만들기 위해서 땅을 파거나 옮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계획된 공간에서 방문자는 만들어진 길을 따라 정원을 거닐고, 의도된 시점과 경관을 즐기게 된다. 이런 규칙적인 정원에서 유일한 변화 요소는 계절에 따라 형태와 색을 바꾸는 꽃과 풀, 나뭇잎뿐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많은 정원들이 귀족의 문화라고 취급돼 파괴되고 유실됐다. 하지만 이런 정원계획의 패턴과 미적 접근은 후에 파리나 신도시의 도시계획에 응용됐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그 특유의 미적 감각으로 이런 정형성을 디저트의 장식으로도 응용, 발전시켰다.

남아공 스텔른보쉬지방의 정원. 정원의 식물은 각기 다른 색, 냄새, 기억을 선사한다.

남아공 스텔른보쉬지방의 정원. 정원의 식물은 각기 다른 색, 냄새, 기억을 선사한다.

정원을 이야기할 때면 영국을 빠트릴 수 없다. 영국인의 정원사랑은 유별나서 사람을 평가할 때도 그 집 정원의 수준으로 평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등과 같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나 어린이 동화 ‘피터 래빗(Peter Rabbit)’, 2016년 제시카 브라운 주연의 영화 ‘디스 뷰티풀 판타스틱(This Beautiful Fantastic)’에 이르기까지 정원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들이 끊임없이 탄생되는 곳이 영국이다. 특히 너무나도 유명한 1911년 프란시스 버넷의 소설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은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고 세계적으로도 그 제목을 딴 드라마나 만화, 카페나 술집을 수두룩하게 양산했다. 영국에는 정원 작가, 정원 디자이너, 정원 사진가, 정원 역사가 등 정원과 관련된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정원 관련 전시회나 박람회도 연중 열린다.

영국 정원의 형식은 산업혁명 이후인 18세기에 만들어졌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정원의 전통인 기하학을 파기하고, 목가적이고 자연미를 살리는 접근을 추구했다. 그래서 잔디밭같은 열린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며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나 조각, 다리와 같은 인공적 요소나 기하학은 최소화한다. 연못을 만들 때도 가능하면 기존의 운하나 개울을 이용하고, 담벼락이나 퍼골라와 같은 구조물이 있으면 담쟁이나 꽃 등을 주변에 심어서 타 넘어 가도록 한다. 열린 공간의 확장된 시야와 연속되는 경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국 호숫가 마을 주택의 정원. 정원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직접적, 의도적, 미적인 방식이다.

영국 호숫가 마을 주택의 정원. 정원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직접적, 의도적, 미적인 방식이다.

영국 정원의 본질은 그 안을 거니는 것이다.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길을 따라가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정원과 다르게 영국은 산책길을 작게 만든다. 조경을 가로지르거나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원이 자연미를 강조하면서 부드럽게 배치됐으므로 구불거리는 산책길을 따라가는 흐름도 유연하다. 여기에서 매직은 스케일이다. 예를 들면, 나무 한그루를 열린 공간 속에 고립시킴으로써 크게 보이게 만들거나 작은 관목들을 곁에 두어 대비시키는 기법 등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선의 각도를 바꿀 때마다 눈앞에 색다른 경관이 펼쳐지지만 전혀 계획된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영국인의 놀이이고 인생이며 추억이다. 우리에게 그림 같은 풍경이 이들에게는 일상인 점은 부러운 사실이다.

정원은 감상이 주목적이지만 경작의 목적도 가진다. 식재료를 위한 텃밭 정원이 대표적이다. 많은 나라의 서민들은 집 안의 작은 정원에 실용 작물을 재배해왔다. 흔히 ‘부엌정원(Kitchen Garden)’이라 불린다. 오늘날에도 일반 정원 한편이나 건물의 옥상에 식자재나 허브를 기르는 정원을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

이처럼 정원의 개념이 반드시 잔디밭이나 수려한 나무, 예쁜 꽃들로만 구성되는 건 아니다. 별도로 정원을 꾸미고 감상할 여유가 없는 경우 그저 주변의 자연 요소를 이용하면 된다. 대표적 예가 포도밭이다. 와인 생산을 위해 포도밭을 가꾸지만 미적 감상을 위한 조경의 개념을 도입하면 그 자체가 정원이 된다. 또 다른 예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옥수수 밭이다. 이곳 사람들은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놀이터를 만들고, 정원을 꾸민다. 약간의 식용, 그리고 대부분은 가축의 사료와 연료로 재배되는, 지극히 실용적 용도인 옥수수를 매일 쳐다보면서 이를 아름답게 꾸밀 생각을 한 것이다.

공원과는 다른 개인적 영역이자 세계

영국 ‘라임 우드’의 정원. 나무 한 그루를 열린 공간에 고립시켜 크게 보이게하거나 작은 관목들을 곁에 두어 대비시켜 스케일을 조정한다. [사진 박진배]

영국 ‘라임 우드’의 정원. 나무 한 그루를 열린 공간에 고립시켜 크게 보이게하거나 작은 관목들을 곁에 두어 대비시켜 스케일을 조정한다. [사진 박진배]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89년 영화 ‘꿈의 구장’의 성공에는 야구와 관련된 스토리 못지않게, 옥수수 밭으로 이루어진 아이오와의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 이곳에는 ‘꿈의 야구장’ 뿐만 아니라 ‘꿈의 축구장’, ‘꿈의 골프장’, ‘꿈의 놀이터’, ‘꿈의 정원’이 수두룩하다. 모두 옥수수 밭을 꾸며서 만든 공간이다. 매일 바라보는 것의 미적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드러나지 않지만 늘 곁에 있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정원이고 낙원이다.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개척하는 과정을 겪으며 역사를 만들어왔다. 정원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직접적이며, 의도적이고 미적인 방식이다. 정원만을 별도로 꾸미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사는 공간, 즉 집에서 자연을 경험하기 위한 목적이다. “신을 만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정원이다. 땅을 파다보면 만나게 된다”는 버나드 쇼의 말처럼 정원을 가꾸는 것은 명상과 같은 경험이다. 계획된 공간에 자리를 잡은 하나하나의 식물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색과 냄새, 그리고 기억을 선사한다.

포르투갈 두오로 계곡의 포도밭. 와인 생산을 위해서 포도밭을 가꾸지만 미적 감상을 위한 조경의 개념을 도입하면 그 자체가 정원이 된다.

포르투갈 두오로 계곡의 포도밭. 와인 생산을 위해서 포도밭을 가꾸지만 미적 감상을 위한 조경의 개념을 도입하면 그 자체가 정원이 된다.

정원을 가꾸고 거니는 작은 일상 하나가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정원에는 아주 오래된 돌도 놓여있고 우리보다 훨씬 먼저 태어나 뿌리를 내린 나무도 있다. 이런 자연을 접하면서 저절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비가 오면 쓸쓸해지고, 해가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진리도 깨달을 수 있다.

정원은 누구나 출입하고 즐기는 공원과는 다르다. ‘가든(gardin)’, ‘자르단(jardin)’ 등으로 표기되는 정원의 어원은 ‘둘러싸는’의 의미다. 체코 언어로 정원을 뜻하는 ‘자하라다(Zahrada)’ 역시 ‘담장 뒤편’이라는 뜻이다. 사슴 등 동물로부터의 보호가 목적이지만, 동시에 정원은 매우 개인적인 영역이자 개인의 세계다. 가꾸는 사람의 정성과 취향, 삶과 철학이 반영된 장소다. 그래서 누군가를 정원으로 초대하는 것은 나의 삶을 나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찾는 손님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의식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질을 위해서, 능력이 닿는 만큼, 소박하게라도, 가꾸고 꾸미는 것이다.

“책은 빨리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정원은 빨리 가꿀 수 없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공간미식가』,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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