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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쁜 마을’ 처럼, 선진국 품격은 시골에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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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27면

POLITE SOCIETY

스페인의 자하라.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잘 묘사한 문학작품들이 많다. [사진 박진배]

스페인의 자하라.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잘 묘사한 문학작품들이 많다. [사진 박진배]

193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우리 마을(Our Town)’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극작품 중 하나다. ‘우리 읍내’ 등의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여러 번 무대에 올랐고, 국악인 이자람이 각색하여 공연한 적도 있다. 이 작품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묘사한 걸로 유명하다.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이 쓴 미국의 대표 근대소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Winesburg, Ohio)』도 작은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단편모음집이다. “미국의 진정한 모습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다”라는 표현처럼 미국인들은 여행을 할 때 큰 도시 못지않게 작은 마을을 많이 선택한다. 사실 대도시에 사는 많은 미국인들은 시골의 작은 마을 출신이다. 이들 마음속에는 언제나 밀, 콩, 옥수수 밭이 배경으로 보이는, 개울가의 작은 다리가 놓인 고향의 풍경이 남아있다.

콘서트·음식축제 등 정기적으로 열어

미국 켄터키주 코번 마을.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탄생지로 페스티벌과 음식축제를 개최한다. [사진 박진배]

미국 켄터키주 코번 마을.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탄생지로 페스티벌과 음식축제를 개최한다. [사진 박진배]

슈퍼맨은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늘 ‘정직’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이 미국인들이 비록 만화캐릭터지만 슈퍼맨을 역사상 최고의 히어로로 여기는 이유다. 작은 마을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각별해서 많은 영화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1946년 클래식 작품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부터 ‘E.T.’와 같은 공상과학 영화, 줄리아 로버츠, 리차드 기어 주연의 ‘런어웨이 브라이드’와 같은 로맨틱코미디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막론한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이나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마을, 하지만 미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마을의 풍경이 묘사되어 기시감을 부여한다. 어떤 영화들은 아무도 찾지 않던 작은 마을을 유명 관광지로 만들기도 한다. 제임스 딘,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자이언트’의 배경인 텍사스의 예술마을 마르파(Marfa)나 케빈 코스트너의 ‘꿈의 구장’ 야구장이 위치한 아이오아주의 다이어스빌(Dyersville)이 대표적인 경우다.

프랑스 시골을 여행하다보면 간혹 ‘프랑스의 예쁜 마을(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이라는 작은 간판을 볼 수 있다. 1982년 결성된 민간단체의 심사를 통해서 선택된 마을에 부여되는 명칭이다. 자격 조건은 2000명 이하의 인구, 유적지의 보유, 그리고 깨끗하고 예쁜 환경의 보존이다. 프랑스 전역에 160여 곳 정도가 있다. 이 리스트에 오르면 방문객이 증가하는 관광효과를 누리게 된다. 이 운동에 힘입어 이탈리아·벨기에·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도 이 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유사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2001년 문화적, 건축적 유산을 가진 마을을 대상으로 ‘작고 예쁜 마을 조합(I Borghi più Belli d’Italia)’, 일본은 2005년에 ‘일본의 최고 아름다운 마을(日本で最も美しぃ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활동 중이다. 이런 마을들은 기존의 문화 유적지나 자연환경과 더불어 전시, 페스티벌, 콘서트, 음식축제와 같은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방문객을 초대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팬케이크 아침식사’가 그런 경우다.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운동이 번져 세계의 많은 숨겨진 장소들을 소개하고 관광을 진흥시키며 경제적 이익도 가져오고 있다.

이탈리아의 알베로벨로. 전통 건축양식으로 동화 속 마을의 이미지를 풍긴다. [사진 박진배]

이탈리아의 알베로벨로. 전통 건축양식으로 동화 속 마을의 이미지를 풍긴다. [사진 박진배]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우선은 언덕이나 산기슭, 계곡, 호숫가에 위치해서 지리적 혜택을 받는 마을들이다. 방문객들은 자연경관이 좋고, 또 그와 어울리게 조경을 잘 해 놓은 마을을 찾아 고요함을 즐긴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의 배경이 되었던 아미시(Amish) 마을처럼 종교 단체가 공동체로 어울려 사는 지역들도 있다. 이런 마을에서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른 검소한 생활방식, 그리고 그 철학에 바탕을 둔 건축의 절제미와 대지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지역에 적합한 재료와 전통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마을들과 역사적 유적지 마을도 빼 놓을 수 없다. 언덕 위에 작은 요새처럼 지어진 유럽의 중세 마을이나 한옥 마을, 미국의 경우라면 인디언 주거마을인 산타페(Santa Fe) 같은 곳들이다. 대학마을도 하나의 유형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캠퍼스 특유의 고전적 건축물과 아름다운 조경, 주변에 서점과 카페들도 많아 지적 분위기가 넘친다.

‘프랑스의 예쁜 마을’ 간판. 1982년 결성된 민간독립단체의 심사를 통해 선택된 마을에 부여하는 명칭이다. [사진 박진배]

‘프랑스의 예쁜 마을’ 간판. 1982년 결성된 민간독립단체의 심사를 통해 선택된 마을에 부여하는 명칭이다. [사진 박진배]

작은 마을에는 장점이 많다. 우선은 동산, 개울, 숲 등의 자연과 가깝다. 각박한 현대사회와 분리된 느린 삶의 속도도 큰 매력이다. 간혹 소와 말, 닭이 보이고 풀 냄새, 땅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마치 산업사회 이전의 시대에 존재하는 것 같은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친밀한 지역사회의 정서도 장점 중 하나다. 철물점 주인은 동네사람들이 어떤 집에 살고 수리를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있다. 식당에서 직원은 손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문을 받고 “어제도 같은 거 먹지 않았느냐?”와 같은 대화를 건넨다. 이런 정겨움은 외부인에게도 균일하게 적용된다. 주민들은 집 앞의 그네나 의자나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 손을 흔들며 웃는다. 환대와 친절함은 시골 작은 마을의 진정한 가치다.

웬만한 나라에는 수도를 포함해서 대도시들이 있다. 그리고 그 규모나 기반 시설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내공의 차이는 시골에서 두드러진다. 선진국일수록 시골이 아름답다. 무질서한 총천연색 간판이나 유치한 조형물, 플라스틱은 찾아볼 수 없다. 시골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선진국의 공통된 정책이다. 대도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그 지역의 역사와 풍토, 문화를 바탕으로 색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지역과 마을에 따른 차별화도 필요하다. 벽화가 유행하면 따라 그리고, 구름다리가 명물이 되면 따라서 설치하면 경쟁력이 없고 쉽게 식상해진다.

자연에 가깝고 느린 삶의 속도 큰 매력

스코틀랜드의 크리난. 바닷가에 위치한 고요한 마을로 소박하고 고요한 경관이 아름답다.

스코틀랜드의 크리난. 바닷가에 위치한 고요한 마을로 소박하고 고요한 경관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마을을 만드는 프로젝트는 지역의 색채, 질감, 자연과의 조화가 시작이다. 깨끗함은 기본이다. 가로 정비 뿐 아니라 골목길, 마을의 공터, 담벼락 외부에 보이는 환경 모두를 미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다. 마을 곳곳에 꽃을 심고 화분과 벤치를 놓는 것, 예쁜 간판을 달고 절제된 벽화나 간결한 안내판을 그리는 등의 작업이다. ‘위대한 미국의 메인스트리트(Great American Main Street)’는 작은 마을의 매력과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다. 낙후된 건물과 시설을 복원하고, 상점의 외관을 예쁘게 치장하는 운동을 꾸준히 전개한다. 오래된 슈퍼와 더불어 동네 방앗간, 서점, 정육점, 철물점 등이 연결된 하나의 거리를 조성할 수 있다. 요즈음 유행처럼 근대거리를 복원해서 역사적 기록과 시간여행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환대의 전통이 훌륭하다. 집에 손님이 올 때면 깨끗하게 청소하고 준비를 한다. 이제 그 마음과 영역을 집에서부터 마을로 확대해서 실천할 때다. 마을의 외부는 누구나, 언제든지 지나가는 장소다. 마을의 환경을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마음은 미적 가치를 인지하고 부지런할 때만 이룰 수 있는 경지다. 사람들의 인심과 친절함이 반영된 예쁜 마을들이 확산될 때 국토는 조금씩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거기서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많은 것, 그 정서와 가치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공간미식가』,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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