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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엔저에...日 31년 만에 물가 상승 최대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엔화 가치 하락(엔저)과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1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엔달러 환율 동향을 보여주는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21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엔달러 환율 동향을 보여주는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총무성이 21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작년 같은 달 대비 3.0% 상승했다. 2014년 소비세율 인상분이 물가 지수에 반영된 효과를 제외하면 1991년 8월(3.0%) 이후 31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연속 2%대를 이어가다 9월에 3%대로 올라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엔화 가치마저 급락해 수입품 가격이 급등한 것이 소비자물가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50엔을 돌파하면서 엔화 가치는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3%의 물가 상승은 미국·유럽 등 비교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30년간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던 일본에는 급격한 변화다. 더구나 저소득층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요금이나 식료품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마트 식료품 가격을 기준으로 한 '식품매장 물가 지수' 상승률은 10월 중순 기준 4.5%에 달했다.

거기에 기업 간 거래 물품의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기업물가지수는 9월에 1년 전 대비 9.7% 상승하면서 196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물가지수가 상승하면 결국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어 이후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 정부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 생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 지원 등의 조치를 담은 경제 종합 대책을 이달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싼 일본', 자본과 인재 떠난다

20일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이던 150엔을 돌파하자 일본 언론들은 급격한 엔저가 자본과 인재 유출을 가져와 일본의 국력을 저하시킬 것이란 우려를 드러냈다.

닛케이는 21일 "과거 일본에서는 엔저가 되면 수출 기업들의 수익이 늘어나 벌어들인 외화를 엔으로 바꾸는 움직임에 의해 엔저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면서 하지만 기업들이 제조 거점을 해외로 옮긴 현재 수출 확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수입액 상승으로 무역수지는 악화하고 있다. 전날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22년도 상반기(4∼9월) 무역수지는 11조 75억엔(약 105조 4900억원) 적자로,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1979년 이후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무역수지에 해외 투자 수익을 더한 경상수지(계절조정치)도 7~8월 2개월 연속 적자였다.

닛케이는 또 엔저가 계속되면 해외에서 노동자들이 들어오지 않게 되고 예금 등의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며 "국력이 한층 저하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 개입으로 엔저 막기 어려워" 

아사히신문은 엔화 가치 하락이 지난 30년간 성장하지 못한 일본 경제의 약점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선) 세계를 석권하는 혁신 기업이 탄생하지 않고 기업 생산성도 오르지 않아 대규모 금융 완화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며 "통화는 한 나라의 경제력을 반영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없는 나라의 통화는 팔리기 쉽다"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가 초저금리와 대규모 금융완화를 고수할 경우 엔저를 타개할 방법은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엔화 가치 하락세에 제동을 걸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 연내에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0엔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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