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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혼 "전술핵 배치 땐 北 타깃 될 것…美도 안내켜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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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대북·이란 제재 조정관은 19일(현지시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술핵이 한국 영토에 배치되는 순간 북한의 선제공격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광조 기자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대북·이란 제재 조정관은 19일(현지시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술핵이 한국 영토에 배치되는 순간 북한의 선제공격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광조 기자

"최근 미국 정부가 보인 반응은 핵무기 재배치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예의 갖춰 말한 것이다. (핵무기 재배치는) 비현실적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만난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대북·이란 제재 조정관은 한국 정치권의 전술핵 재배치 논란에 대해 "북핵 억지라는 측면에서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아인혼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제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브루킹스 수석연구원인 그는 여전히 '대북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술핵이 한국 영토에 배치되는 순간 북한 선제 공격의 잠재적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미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여권의 전술핵 재배치 요구 움직임에 대해 "한국 문제는 한국에 물으라"(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고 답했다. 국무부 출신인 아인혼 전 조정관은 "이런 반응이 '관심 없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예의있게 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 여권 인사의 생각에 대해 안 내킨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고도 했다.

한국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자체 핵개발 목소리에 대해선 우려했다. "이 경우 일본 역시 핵개발에 나설 것이 분명하고,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 때보다 경제적으로 또는 심지어 군사적으로 더 큰 보복에 나서면서 동북아시아의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핵우산을 약속했던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약해지고 안보 약속이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핵잠수함이나 전략폭격기 등 미군의 전략자산을 더 자주, 혹은 상시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방안에 더 힘을 실었다. "핵무기를 실은 잠수함이 한반도 인근 해저를 오가게 하고 괌 기지에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폭격기를 배치하는 게 억지력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많은 돈이 들겠지만 억지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라며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일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토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펼쳐줄 것이냐는 질문엔 주한미군 2만8500여명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적대 행위가 일어날 경우 미국이 자동 개입할 것이므로 이는 한국 방어를 약속하는 가시적인 징표"라고 했다.

다만, 한·미 양국의 더 강력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미국의 억지력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신뢰가 필수 요소라고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확장억제를 계획하고 운용하는 데 있어 한국에 더 많은 역할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012년 1월 로버트 아인혼 당시 미국 국무부 대북·이란 제재 조정관(가운데)이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회의를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제재를 이끌었던 그는 '대북 저승사자'로도 불렸다. 중앙포토

지난 2012년 1월 로버트 아인혼 당시 미국 국무부 대북·이란 제재 조정관(가운데)이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회의를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제재를 이끌었던 그는 '대북 저승사자'로도 불렸다. 중앙포토

한국 정치권에서 전술핵 재배치가 계속 논란이다. 현실성 있을까.  
비현실적이다. 한미 양국이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배치된 장소가 북한 선제공격의 잠재적 목표물이 될 뿐이다. 너무 취약한 방법이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실(NSC)과 국무부가 이와 관련한 질문에 "한국 문제는 한국에 물으라"고 답했다.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예의를 갖춰 한 것이다. 핵무기 재배치 말고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란 이야기다. 나는 이제 더이상 정부 인사도 아니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 여권 인사의 생각에 대해, 안 내킨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1961년 소련의 핵위협을 두고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냐" 물었다. 지금 한국에서도 서울을 위해 미국 도시를 희생할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온다.  
상황이 다르다. 냉전 시대엔 미국 도시들조차 소련의 공격에 노출돼 있었다. 그때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들에 대한 방위 약속을 지켰다. 프랑스만 조금 다른 입장이었을 뿐, 독일과 영국 등 다른 나토국은 미국을 신뢰했는데 유럽에 주둔해 있던 미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주둔해 있는 2만8500명의 미군은 한반도에 어떤 적대적 행위가 있을 경우 미국이 자동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가시적인 징표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그냥 발을 뺄 수는 없다.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고 자체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다.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기 능력을 갖출 경우 동북아에 엄청난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일단 일본 역시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사드 배치 당시 중국의 반발을 기억하지 않나. 중국이 경제적으로, 심지어 군사적으로도 보복 조처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핵우산을 약속했던 미국과 동맹 관계가 약해지고 안보 약속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미군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상시 배치하자는 의견은.
미군의 전략자산을 더 자주, 혹은 상시 배치하는 게 더 나은 아이디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핵미사일을 실은 잠수함이 한반도 인근 해저를 오가게 하고 괌 기지에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 폭격기를 배치하는 게 억지력에 더 효과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비용이 들 것이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를 위해 새 시설을 만들고 보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 억지에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 한·미가 가동하고 있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로도 충분할까.  
충분하지 않다. 물론 중요한 협의체지만 한단계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일단 확장억제를 위해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데 있어 미국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한국에 더 큰 역할을 맡겨야 한다. 한국의 안보 문제다. 한국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다. 이를 통해 한국 국민들에게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북한에도 미국이 핵 억지에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2016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치권에선 전술핵 재배치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힘들다. 그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와 중국의 협조를 받아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는 여러 결의안을 채택했다. 강력한 제재도 가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 동안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더 가까워졌고 전략적 동반자가 됐다. 핵을 보유한 두 나라가 대북 제재를 꺼리면서 북의 도발을 막기 위한 압박도 힘들어졌다. 주요 강대국들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상황도 함께 악화됐다.  
미국이 결국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될까.
그러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북한을 적법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게 분명 김정은의 목표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규범을 어겨가며 불법적으로 핵무기를 취득했다. 만약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됐다면 단기적인 실행조치들을 논의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항상 완전한 비핵화에 맞춰져야 한다. 이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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