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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 30년…그 의사는 명의, 환자는 최장기 생존자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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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년을 건강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1일 서울아산병원 서관 앞 정원에서 만난 70대 동갑내기 두 남자는 이렇게 감사 인사를 주고받았다. 병원 수술대에서 의사와 환자로 연을 맺은 두 사람은 30년의 세월을 동행하며 친구가 되었다. 간이식 분야 세계 석학이 된 이승규(73) 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 교수와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 이상준(72)씨 이야기다.

국내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 이상준 씨(오른쪽)와 집도의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이 씨 간이식 수술  30 주년을 기념해 서울아산병원 서관 앞 정원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아산병원 제공.

국내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 이상준 씨(오른쪽)와 집도의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이 씨 간이식 수술 30 주년을 기념해 서울아산병원 서관 앞 정원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아산병원 제공.

이상준 씨는 지난 1991년 몸이 피곤해 병원을 찾았다가 뜻밖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B형 간염이 간경화로 악화해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길어야 1년 6개월 살 수 있다고 했다. 유일한 치료법은 간이식이다. 그러나 당시에만 해도 간이식 사례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1988년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간간이 간이식 수술이 있었지만, 성공 사례가 거의 없었다. 지금 간이식의 대가로 불리는 이승규 교수도 당시엔 시뮬레이션을 수차례하고 수술실에 들어갈 정도로 막 첫발을 뗐던 때였다. 이 씨는 1992년 결국 이 교수에 수술받았는데, 이 교수에게 이씨가 세 번째 환자였다.

23시간에 걸친 긴 수술 끝에 뇌사자의 간이 이 씨에게 무사히 이식됐다. 이후 이 씨는 일흔이 넘은 현재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국내 최장기 생존자가 됐다. 장기이식 환자는 수술만큼 이식 후 관리가 중요한데, 이 씨는 수술 후 30년간 매일 1만 보 이상을 걷고 금주와 금연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45일마다 병원을 찾아 B형간염 항체 주사를 맞고 90일마다 외래에서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이 씨는 “스스로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게 나를 치료해준 의료진에게 은혜를 갚는 길”이라며 “수많은 간이식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의료진의 지시대로 약 복용, 운동, 식사를 철저히 지킨 덕분에 지난 30년간 단 한 번의 이상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씨의 성공적인 수술과 회복은 많은 간이식 환자들에게 희망이 됐다. 미지의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의 역사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 씨는 선물 받은 새 삶을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는 데 썼다.

치료비가 부담돼 간이식 후 치료를 포기하고 건강이 악화한 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간이식협회를 만들었다. B형 간염 항체 주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발 벗고 나섰다. 나눔행복재단을 마련해 수십 명의 환자에 간이식 수술비를 마련해줬다. 이승규 교수도 재단에 본인의 책 인세를 전액 기부하는 등 힘을 보탰다.

국내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 이상준 씨(오른쪽)와 집도의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이 씨 간이식 수술 30주년을 기념해 서울아산병원 서관 앞 정원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아산병원 제공.

국내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 이상준 씨(오른쪽)와 집도의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이 씨 간이식 수술 30주년을 기념해 서울아산병원 서관 앞 정원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아산병원 제공.

이승규 교수는 “이상준 씨의 모범적인 건강관리와 간이식인들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은 환자들은 물론 내게 큰 용기와 귀감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이 씨 수술 후 서른 해가 지난 지금 국내 장기이식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라며 “이 씨와 같은 장기 생존 환자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1992년 뇌사자간이식 수술과 1994년 생체간이식 수술을 시작으로 지난 9월까지 생체간이식 6666건, 뇌사자 간이식 1344건을 시행했다. 간이식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변형우엽 간이식’은 간이식 성공률을 크게 올려 세계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매김했다. ‘2대 1 간이식’은 간이식 기증자의 범위를 넓혀 세계 간이식 역사를 새로 썼다.

서울아산병원의 간이식 생존율은 98%(1년), 90%(3년), 89%(10년)로 장기이식 선진국인 미국의 이식 생존율을 뛰어넘는다. 최근 10년간 시행한 소아 생체 간이식의 경우에도 생존율 99%를 기록해 생존율 100% 시대를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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