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카오 독주? 정부도 한몫했다" 업계 볼멘소리, 이유 있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3월 '국민비서 서비스 협약식'의 여민수 카카오 대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한성숙 네이버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사진 행정안전부

지난해 3월 '국민비서 서비스 협약식'의 여민수 카카오 대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한성숙 네이버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사진 행정안전부

나란히 손잡고 함께 가던 파트너, 갑자기 길을 멈추고 손을 뿌리치더니 엄중히 경고한다. “이 길로 가면 가만두지 않겠어.”

15일 카카오톡 먹통 사태 이후 정부는 ‘카카오톡 독점’에 회초리를 들었다. “독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이라는 표현을 대통령이 직접 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카카오톡 독주를 굳히는 데에는 정부도 한몫하지 않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재 중앙·지방 정부와 공공기관들의 세금·범칙금이나 건강검진, 국가장학금 같은 주요 알림들이 카카오톡으로 전송되고 있어서다.

‘국민 앱’ 네이버·카카오의 힘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발발 이후 빛을 발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양사는 지도 앱에서 약국별 마스크 재고를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이후 양사는 정부 방역의 파트너가 됐다. 식당 입장을 위한 전자출입명부 QR코드, 백신 잔여분 확인 및 접종 예약, 코로나 지원금 확인 등이 모두 카카오·네이버 안에 있었다. 노년층도 자녀의 도움을 받아가며 카카오톡·네이버 앱을 깔았다. ‘전 국민이 쓰는 앱’에서 ‘전 국민이 써야 하는 앱’이 됐다.

카카오·네이버가 이런 필수 정보의 통로가 되는 데는 행정안전부 역할이 컸다. 두 기업은 행안부가 지난해 5월 시작한 공공 알림 서비스 ‘국민비서 구삐’의 첫 협력사다. 국민비서는 코로나19 방역 정보는 물론 건강검진, 해외 직구 통관, 국가장학금, 교통 과태료 같은 정부 알림을 카카오톡·네이버 등 민간 앱으로 보내준다. 최근 가입자 15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민비서를 받아볼 수 있는 민간 앱은 현재 8개. 하지만 선점 효과는 카카오·네이버가 누렸다. 국민비서는 카카오·네이버·토스 3개 앱에서 시작했고(2021년 3월), 1년이 지나서야 신한은행·KB은행(2022년 5월), NHN페이코(2022년 10월)에도 참여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상황을 아는 관계자들은 “전자지갑 시장 선점을 원하는 업체들이 있었으나, 행안부는 유력 플랫폼을 통한 흥행을 원했다”, “원래 카카오·네이버 두 군데로 시작하려다 스타트업인 토스도 추가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 사업은 일반적으로 대기업을 배제하고 중소기업에 기회를 주지만, 국민비서는 돈이 오가는 수주 계약이 아닌 플랫폼 사용 협약이기에 분위기가 달랐다는 것. 결과적으로 카카오·네이버 독점을 강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 공공지능정책과는 18일 중앙일보에 “당시 빠른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민간 채널을 이용하는 분위기였다”며 “국민들이 즐겨 찾는 앱을 중심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카카오톡의 메신저 점유율 90%에 비하면 국민비서 내 카톡 점유율은 25% 정도로 압도적이진 않다”며 “카톡 장애 발생 시 문자 메시지를 대체 발송한다”고 덧붙였다. 행안부는 이동통신사와 협력해, 국민비서 알림을 모바일 앱 외에 멀티미디어 문자(MMS)나 고도화 문자(RCS· Rich Communication Services)로도 보내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카카오톡 잔여 백신 예약 화면 캡처

사진 카카오톡 잔여 백신 예약 화면 캡처

정부의 카카오톡 의존이 방역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성범죄자 알림e’ 고지를 지난 2020년 11월부터 카카오톡으로 보내고 있다. 아동·청소년 자녀를 둔 세대주에게 인근에 사는 성범죄자 신상 및 주소를 알려주는 여가부 사업으로, 원래는 우편으로 보내줬다. 그런데 카톡으로 우선 알림을 보내고, 열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만 우편물을 보내는 방식이 됐다(2022년 1월, 네이버 알림 추가). 여가부로부터 ‘주변 성범죄자 정보를 확인하라’는 카톡 메시지를 받은 후 ‘열람하기’ 버튼을 누르면 본인 인증을 위해 카카오페이에 가입하라는 안내가 뜬다. 여가부는 당시 정책을 발표하며 “우편고지에 소요되는 예산 10억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싸고 편하다’는 이유로 여러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가 대형 플랫폼 쏠림에 일조해 왔다.

이전 정부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17일 ‘행안부 다음(daum) 메일 사건’이 한 예다. 행안부 대변인실이 기자들 대상 보도자료를 다음 메일로 배포하다가, 카카오 먹통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은 것. 행안부는 “앞으로 공직자 통합 메일(korea.kr)을 통해 보도자료를 배포하겠다”고 했다. 공직 사회의 무감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간과 협력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많은 국민이 쓴다’, ‘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로 시장 1위 업체에 먼저 문을 여는 둔감함이 문제다. 감독관일 때는 ‘가입자 수 믿고 몸집 불린다’고 준엄하게 플랫폼을 꾸짖으면서, 정작 정부 업무에서는 ‘가입자 많은 데랑 해야지’라고 쉽게 택해 왔다. 그래서야 감독관의 권위가 지켜지겠나. 카카오톡 독점, 정부가 들여다볼 필요 있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는 플랫폼 독점과 시장 경쟁에 대한 ‘감수성’이 있었는지, 최소한의 성찰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