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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종주 논설위원이 간다

허니문 못 누린 윤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 '허니문 와인' 특수도 ‘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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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종주
임종주 기자 중앙일보

‘취임식 와인’의 풍미는 어디로 갔을까 

임종주 논설위원

임종주 논설위원

지난 6일, 만추에 접어든 경기도 양평 들녘은 저마다 월동 준비로 분주했다. 꿀벌들은 먹이를 쟁여 놓느라 부지런히 제집을 드나들었다. 남한강에 인접한 양평 백병산 자락은 산 좋고 물 좋아 양봉에 좋은 입지로 손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우리술 품평회’ 단골 대상작인 ‘허니문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벌꿀을 발효시켜 빚는 이 술은 달콤한 맛과 산뜻한 꿀 향의 조화가 특색이다.

‘허니문 와인’의 풍미는 어디로 갔을까 #하루 수백병 팔리던 와인,두달 만에 제자리 #사회적 양극화로 대통령의 ‘밀월’ 갈수록 단축 #허니문 실종은 국가적 불행, 갈등· 분열 심화 #취임 6개월 … 소통·포용·협치로 국정기조 바꿔야

취임식 건배주 특수, 두 달 만에 실종
시간을 거슬러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경축연회가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렸다. 이때 헤드 테이블 건배주로 오른 술이 ‘허니문 와인’이다. 윤 대통령은 내외빈과 와인잔을 서로 부딪치며,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밀월처럼 달콤한 정치적 허니문을 꿈꿨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 경축연회에서 참석자들과 와인으로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김명수 대법원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 경축연회에서 참석자들과 와인으로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김명수 대법원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허니문 와인’은 덩달아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매출이 평소보다 4~5배 급증했다. 하루 10~20병 나가던 게 택배 트럭에 수백 병씩 가득 실려 나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생산자인 아이비 영농조합법인 양경열 회장은 “허니문이라는 이름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주문 전화가 빗발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특수는 딱 두 달이 끝이었다. 주문이 갑자기 빠지더니 이내 종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취임식 건배주 홍보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도 그 무렵부터 들려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하락과 겹쳐지는 시기다. 달콤한 허니문의 풍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난 6일 '허니문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아이비 영농조합법인 양경열 회장. 임종주 기자

지난 6일 '허니문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아이비 영농조합법인 양경열 회장. 임종주 기자

대폭 줄어든 미국 대통령의 밀월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첫해인 2009년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역대 미국 대통령의 허니문을 추적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정치적으로 허니문 효과(The honeymoon effect)는 새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출발점은 분명한데 언제 사라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취임 후 대략 6개월까지라는 게 통념으로 여겨져 왔다. 새 대통령이 특출한 리더십을 앞세워 선제적으로 정국을 주도하거나, 야당이 전열을 미처 재정비하지 못했을 때 보다 뚜렷해진다. 여야 간 탐색과 밀월 관계가 작동하고, 언론은 비판을 다소 유보함으로써 새 정부에 우호적 여론이 형성된다.
갤럽은 자체 데이터를 토대로 역대 대통령의 재임 중 지지율 평균을 산출했다.  그렇게 나온 수치인 55%를 잣대로 놓고 측정했다. 그 결과 33대 대통령 트루먼을 시작으로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존슨을 거쳐 37대 닉슨까지 5명이 평균 26개월간 밀월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트루먼이 11개월로 가장 짧았고, 아이젠하워가 41개월로 가장 길었다. 그 후엔 대폭 줄기 시작했다. 38대 포드부터 43대 부시까지 6명은 평균 7개월간 허니문이 유지됐다.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지난해 1월 57%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한 현직 대통령 바이든은 밀월 기간이 더 짧아져 6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임 대통령 트럼프는 50% 벽을 한 번도 넘지 못했다. 퇴임 1년을 앞두고 기록한 49%가 최고치였다. 허니문 효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첫 사례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격돌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바이든 대통령. [EPA·AFP=연합뉴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격돌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바이든 대통령. [EPA·AFP=연합뉴스]

허니문 갈수록 줄거나 사라지는 추세
한국 대통령의 허니문은 어떨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한국갤럽의 직무수행 평가 자료를 토대로 평균 지지율을 내보니 42%였다. 단순 비교하면 미국보다는 13%p 낮은 수치다. 이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세 전직 대통령의 허니문은 평균 18개월이었다. 그 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평균 17개월로 한 달 줄어들었다. 이 중 노무현·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이 42% 아래로 떨어져 허니문 효과가 초반에 사라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지율 81%로 임기를 시작해 42개월 동안 가장 긴 밀월을 유지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번에는 대선 득표율에 20%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척도를 달리해 측정했다. 이론적으로 거론되는 잣대 중 하나다. 그랬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18대 대선 득표율 51.55%)은 허니문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고, 문재인 전 대통령(19대 대선 득표율 41.08%)의 허니문은 앞서 대통령 평균 지지율(42%)로 측정한 기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6월, 지지율 49%를 기록했다. 역대 대통령 평균 지지율 42%보다는 7%p 높지만, 자신의 대선 득표율 48.56%와는 거의 같은 수준이다. 새 지지층 유입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7월에는 32%로 급락했고, 8월과 9월에는 각각 26%와 28%로 더 떨어졌다.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이준한 교수는 “취임 이후에 대선 득표율보다 15~20% 뛰어야 전 국민적 지지를 임기 초에 누린다고 할 수 있는데 그만한 지지율 조사 결과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상 허니문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평가했다.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맞물린 경우를 제외하면 허니문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갈수록 짧아지거나 없어지는 추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야당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유권자의 기대감에 낀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대통령은 달콤했던 꿈에서 깨어나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허니문 실종에 드리운 양극화의 그림자
허니문 실종의 주된 이유로 사회적 양극화가 꼽힌다. 유권자들이 정치적·이념적으로 좌우 극단으로 나뉘다 보니 갈등과 분열은 심화하고 협상과 절충, 타협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승자와 패자 간의 근소한 표 차이는 심리적 선거 불복과 차기 선거를 겨냥한 이전투구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하루 수백병 팔리던 와인,두달 만에 제자리
사회적 양극화로 대통령의 ‘밀월’ 갈수록 단축
"허니문 실종은 불행한 일, 피해는 국민에 가게 돼"
윤 대통령, 소통·포용·협치로 국정기조 바꿔야

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정치공학적 계산법이 먼저 따라붙는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는 뒷전이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가속한다. 이준한 교수는 “거의 모든 유권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알고 전파하다 보니 대통령이 리스크(위험) 요인을 관리하고 파문을 줄이려는 노력을 할 틈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크고 전문성과 능력, 도덕성을 모두 갖춘 존경받을 만한 국가적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었던 데다 고정된 지지 기반도 형성돼 있지 않았고, 상대 당과 후보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일시적으로 뭉쳤다가 빠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등 지지 구조에 근본적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임기 초 여권 내에서 표출된 권력투쟁 양상과 각종 인사 논란, 외국 순방 외교에서 빚어진 실수 등은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 한꺼번에 불어닥친 경제·안보 복합위기는 국정운영의 부담을 가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강원 속초시 엑스포 잔디광장에서 열린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착공 기념식을 마치고 속초 중앙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강원 속초시 엑스포 잔디광장에서 열린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착공 기념식을 마치고 속초 중앙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허니문 실종은 국가적 불행

허니문을 누리는 대통령은 강력한 권한과 대중적 지지를 등에 업고 국정 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와 금융실명제 도입, 김대중 정부 때의 외환위기 극복 캠페인 등은 모두 허니문 기간에 추진됐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허니문 실종은 불행한 일이다. 그 기간에 중요한 민생법안과 현안이 다 통과되거나 처리된다. 그렇게 되지 못한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허니문이 짧든, 없든 취임 6개월부터는 현실의 시간이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정책 기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개인적 호불호는 접고 국민을 중심에 둔 사고로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소통과 협치, 경청의 자세로 상대를 인정하고 국민을 끌어안아야 한다. 최진 원장은 “대통령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하고, 참모 기능의 쇄신과 강화를 통해 국정컨트롤 타워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번 지나간 신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지율은 다시 높일 수 있다. 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반쯤 허니문에 버금갈 정도의 지지율을 회복한 바 있다.
벌꿀 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경열 회장은 “이 와인을 마시고 화합이 됐으면 좋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윤 대통령이 리더로서 통 큰 마음으로 야당을 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어 “야당도 비판과 견제가 필요하겠지만, 성급하게 발목만 잡으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갤럽 역대 대통령 직무 수행평가 조사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취임한 이후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분기별 조사(2012년 1월 이후 월별 조사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