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20대 사망원인 57%는 극단선택, 고독사는 9년새 3.4배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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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청년이 세상 등지는 사회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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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엔 그림자가 남는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인 유품엔 망자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다. 거실에 나뒹구는 술병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던 외로움을, 주방의 오래된 음식은 삶의 의지가 천천히 꺼져갔음을 나타낸다. 반대로 일상의 삶이 그대로 배어 있는 유품은 전혀 준비되지 못한, 갑작스런 이별을 뜻한다.

유품에 담긴 죽음의 의미

박수경(가명·33)씨의 마지막이 그랬다. 안방 화장대는 물티슈와 화장품처럼 평소 쓰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였다. 건넌방 빨래 건조대엔 미처 개지 못한 빳빳한 수건과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지난달 16일 그의 유품 정리를 맡았던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고인이 끝까지 살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했다.

20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예방 예산은 일본의 4.6%에 불과
핀란드 6년간 5만명 투입 심리부검
영국은 극단선택 예방 장관 임명도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수경(가명·33)씨가 집에 남긴 유품들.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수경(가명·33)씨가 집에 남긴 유품들.

박씨는 왜 극단 선택을 했을까.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은행 서류가 많이 보였다. 연봉 2000만원에 대출금만 1억 원이 넘었다. 그 옆에는 임대차 계약서가 있었다. 알고 보니 전세 사기를 당한 거였다. 집안 곳곳에 열심히 살려 했던 흔적이 보였지만, 갑작스러운 큰 충격이 그를 무너뜨린 것 같다.”
열심히 살려 했던 흔적이란.
“꾸준히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의무기록이 있었는데, 부친이 극단 선택을 하고 혼자 남겨진 뒤 충격이 컸다고 한다. 고인도 비슷한 시도를 한 적 있고, 병원 검사서에는 ‘자아가 불안정해 자극에 크게 동요된다’고 기록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고 꾸준히 병원에 다니며 버텨왔던 것 같다.”
평소 쓰던 물건이 가지런히 정돈 된 안방 화장대 위엔 은행 대출서류와 전세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거실 TV대와 장식장 위의 화초들은 메마른 모습이었다. [사진 키퍼스코리아]

평소 쓰던 물건이 가지런히 정돈 된 안방 화장대 위엔 은행 대출서류와 전세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거실 TV대와 장식장 위의 화초들은 메마른 모습이었다. [사진 키퍼스코리아]

김 대표는 일본에서 유품 정리 일을 시작한 2006년부터 망자들의 여행 가방을 대신 싸주고 있다. 그중 지난 5월 숨진 김지연(가명·34)씨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죽기 전 모든 유품을 미리 정리해 놨더군요. 꼼꼼히 포장하고 누구에게 줄지 자세한 설명까지 붙여놨죠. 죽기 전까지 그는 계속 혼자였습니다.”

이혼 후 홀로 생계를 꾸렸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망설였다. “쓰레기봉투에 썼다 구겨 버린 유서들이 있었어요. 죽음 앞에서 고민했다는 이야기죠.” 김 대표는 유품 사이에서 따로 사는 딸에게 남긴 책과 편지를 발견했다.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라는 제목이었는데, 아마 본인에게 하고 싶던 말 같습니다.”

또 다른 유품정리사인 김현섭 에버그린 대표는 지난 6월 30대 초반 남성의 유품을 정리하며 눈물이 울컥했다. 방 한쪽엔 피규어들이 가득했는데, 동생뻘의 고인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 나이 또래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각종 고지서와 채무 서류가 많았고 빈 소주병이 10병정도 어질러져 있었다”며 “주식 책도 있었는데 금전적 문제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병사가 많고 젊은 사람들은 극단 선택을 주로 하는데, 대부분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년 고독사 다수가 극단 선택

고독사는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홀로 죽음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명확한 집계 기준이 없어 정확한 통계는 따로 없다. 그래서 보통은 무연고 사망자를 고독사로 본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1025명에서 2021년 3488명으로 급증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고독사의 원인을 살펴보면 질병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 청년층으로 국한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전체 사망원인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대(56.8%)와 30대(40.6%)의 사망 원인 1위는 극단선택이 압도적이었다.

완만한 감소세에 있는 다른 연령대와 달리 20대 자살률은 급증하고 있다. 10만 명당 20대 자살자는 2017년(16.5명)까지는 줄었지만, 2018년부터 늘기 시작해 2021년 23.5명이나 됐다. 4년 새 42.4%나 증가한 것이다. 불황과 취업난,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청년들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경제고통지수는 청년층(15~29세)이 27.2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이는 2015년(22.2) 집계 이후 제일 높은 수치다. 반면 60대(18.8)와 50대(14), 40대(11.5)는 청년층보다는 안정돼 있었다. 젊은 세대가 겪는 고통의 크기가 중장년층보다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대 자살자의 직업을 분석한 경찰청 통계(2020년)에 따르면 무직자가 55.3명(10만 명당)으로 가장 많다. 학생(17.5명), 유흥업 등 기타피고용자(10.5명), 일용노동자(7.1명), 전문직(5.2명) 등 순으로 적게 나타났다. 직업과 일정한 소득이 없을수록 자살률이 높다.

이는 청년 자살이 단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자살을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19세기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헨리 모르셸이다. 그는 1879년 쓴 『자살의 연구』에서 “자살은 결코 개별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 현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1897년 발간한 『자살론』에서 다양한 통계자료와 실증연구로 자살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자살 유형을 크게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로 구분하고 공동체의 통합과 결속력을 강조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타인에 무관심한 사회 환경이 자살률을 높인다는 뜻이다.

극단 선택의 원인은 사회구조 탓

실제로 자살은 사회 변화와 관련이 깊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처음 집계를 시작한 1953년부터 1975년까지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6.2명에서 31.9명으로 급증했다. 이에대해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쟁 이후 혼란이 크고 빠른 산업화로 빈부격차도 심했던 시기”라며 “공동체의 결속력도 약화돼 벼랑 끝에 선 이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자살률은 크게 줄어 1991년(15.2명) 최저를 기록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 이후 시민의 권리가 향상됐고 높은 성장과 함께 노동과 자본의 소득분배도 꾸준히 개선됐다”며 “사회가 발전하고 여럿이 과실을 나눠 갖게 되면서 자살률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살률은 다시 늘었다. 심지어 2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이는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이 많고 미래 또한 암울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은 개인의 사회적 고립도(24.1)가 OECD 최상위권이다. 영국(6.8)·독일(8) 등 주요 선진국과 큰 차이가 나고, 평균(11.4)보다 2배 이상 높다.

반면 ‘자살대국’이라고 불렸던 일본은 2009년 24.4명이었던 자살률이 2019년 15.7명으로 급감했다. 일본은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적극 대응했다. 후생노동성과 경찰청이 매월 통계를 발표하고, 지자체는 자살 원인과 성별·연령·직업·거주지 등을 밀도 있게 조사했다. 정교한 분석과 빠른 대응은 위험군 관리에 용이했다.

아울러 1인 가구의 급증으로 더욱 심각해진 고독사 문제를 자살과 함께 정책 우선순위로 삼았다. 특히 정부가 나서 ‘고독’이라는 개인의 감정적 표현 대신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상황을 나타내는 ‘고립사’라는 표현을 써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960~1980년대 자살률이 3배 넘게 폭증했던 핀란드는 1986년 국가 주도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6년간 5만명의 인력을 투입해 자살자의 생전 행동을 분석하고 주변 인물을 인터뷰했다. 이는 그물처럼 얽혀 있는 자살의 사회·경제·개인적 원인을 밝혀내는 사회·심리적 부검의 원조가 됐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사회체육부 장관을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보건부 장관을 자살예방 장관으로 겸직 발령했다. 만성적 외로움은 하루 15개비의 담배를 피운 것처럼 건강에 해롭고, 자살 등의 증가로 국가 경제에 320억 파운드의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서다.

김중백 교수는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법령을 제정했지만 관심과 노력의 크기가 달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자살예방 예산(368억 원)은 일본(7937억 원)의 4.6%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지역사회의 유대를 높여 사회적 고립을 막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게 본질적 해법”이라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