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공산당선언』 『자본』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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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마르크스 엥겔스 도서전에 가보니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마르크스 사상은 창당, 건국 및 흥당흥국(興黨興國)의 근본적인 지도 사상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개막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그는 1시간 45분간 이어진 업무보고에서 ‘안전’ 혹은 ‘안보’와 함께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많이 거론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르크스가 시장(市場)보다 더 많이 언급됐다”고 분석했다.

예상대로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고 그는 ‘시(習)황제’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중국은 과연 마르크스주의를 얼마나 계승하고 있는 걸까.

저작 집대성한 MEGA 한글판 첫선
현대 마르크스주의 재해석 이끌어

런던 마르크스 묘지는 입장료 받고
『자본』 초판 200만 달러 넘게 거래

‘시황제’의 중국 “껍질만 사회주의”
“파시즘 전조 국가자본주의일 뿐”

지난 주말(21~23일) 가을색 완연한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그 일대에서 2022 파주 북소리 축제가 열렸다. 축제의 일환으로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기획한 ‘마르크스 엥겔스 도서전’과 관련 토크쇼에 21~22일 이틀간 다녀왔다.

『자본』 70여 개 언어로 번역

⑥ 만프레드 보핑거(1991). 베를린 장벽 붕괴와 구 소련 몰락 여파로 조롱이 최고조에 달했다. ⑦ 독일 슈피겔 커버(2005). 큰 제목은 ‘하나의 유령이 다시 돌아왔다’. ⑨ 마트 뷔르커(2008). ⑩ 헬무트 야체크. 그는 공황의 이상적인 조언자였을 것이다-카를 마르크스(2008). 금융위기 전후로 대접이 달라졌다. [사진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⑥ 만프레드 보핑거(1991). 베를린 장벽 붕괴와 구 소련 몰락 여파로 조롱이 최고조에 달했다. ⑦ 독일 슈피겔 커버(2005). 큰 제목은 ‘하나의 유령이 다시 돌아왔다’. ⑨ 마트 뷔르커(2008). ⑩ 헬무트 야체크. 그는 공황의 이상적인 조언자였을 것이다-카를 마르크스(2008). 금융위기 전후로 대접이 달라졌다. [사진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기획전은 메가(MEGA) 한글판 출판 론칭 기념이다. MEGA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정식 출판물뿐만 아니라 편지·초고·연구노트 등 관련된 모든 것을 모은 전집이다. 이번 도서전은 구 동독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에서 MEGA 편집을 담당했던 롤프 헤커 교수가 평생 수집한 『공산당선언』과 『자본』 1권의 국제적 판본과 카툰·캐리커처를 전시했다. 2013년 유네스코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과 『자본』을 인류 기록유산으로 선정했다. 헤커 교수는 “두 저작은 인문도서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돼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의 반열에 올랐다”고 했다. 『공산당선언』은 약 100개 언어 이상으로, 『자본』은 약 70개 언어 이상으로 번역됐다.

두 저작 이외에 “공산주의는 우리에게 세워야 할 상태, 현실이 따라야 하는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현재의 상태를 폐기하는 현실의 운동으로 부른다”는 문장이 많이 인용되는 『독일이데올로기』와 ‘소외된 노동’에 대한 분석이 돋보였던 『1844년 경제학 철학 초고』 등 유명한 책의 초판본이 전시됐다.

① 안톤 크뤼거(1919). ‘올림푸스 산의 늙은이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됐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슬(전쟁)에 다시 묶였군’. ② 클라우스 슈투트만(1990). ③ 보리스 라브사티낙의 작별인사(1990). ④ 안드레이 믈레코의 악마(1990). ⑤ 클라우스 폰더베르트의 바보들(1990). [사진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① 안톤 크뤼거(1919). ‘올림푸스 산의 늙은이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됐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슬(전쟁)에 다시 묶였군’. ② 클라우스 슈투트만(1990). ③ 보리스 라브사티낙의 작별인사(1990). ④ 안드레이 믈레코의 악마(1990). ⑤ 클라우스 폰더베르트의 바보들(1990). [사진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마르크스가 직접 출판한 『자본』 초판과 원고의 가격이 치솟아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마르크스는 『자본』 초판을 1000부 찍어 300부를 자필 서명과 함께 지인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강신준 교수는 “자필 서명이 붙은  『자본』 초판 헌정본의 경우 200만 달러(28억원) 넘게 경매에 나왔고, 원고 한 장이 중국 상하이 경매에서 6억원에 팔린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해방 직후 출판된 최초의 한글판 『자본론』에 눈길이 갔다. 1947년 최영철·전석담·허동이 옮겼는데 러시아판을 번역한 중역본(重譯本)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1, 2권만 나오고 완간되지는 못했다. 그 후 1987년 금서의 조건에서 국가보안법에 맞서 출판된 최초의 한글판 『자본』이 완간됐다. 당시 원고를 감수한 이가 강신준 교수다. 강 교수는 “번역자가 책에 ‘김영민’으로 나오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며 “운동권 학생들이 집단 번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출판한 당시 김태경 이론과실천 대표는 구속됐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전 남편인 그는 2014년 고인이 됐다.

금융위기 이후 카툰 분위기 달라져

강신준 동아대 명예교수

강신준 동아대 명예교수

판본보다 눈길을 끌었던 건 카툰과 캐리커처였다. 마르크스에 대한 세간의 대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실감 났다.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와 구소련 붕괴(1991년) 즈음에 그에 대한 조롱과 야유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금융위기(2008년) 전후에는 경제 공황을 예고한 선지자로 평가가 달라졌다. 강 교수와 헤커 교수 얘기들 더 들어봤다.

MEGA판의 의미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유일한 정본 전집이다. 지난해 5월 한글판 두 권이 나왔다. 80여 권을 목표로 앞으로 번역에 20여 년 이상이 더 걸릴 것이다.”(강)
“원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완전성을 추구한다. 텍스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누가 삭제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독일어·영어·불어 등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용한 언어를 그대로 게재한다.”(헤커)
롤프 헤커 교수

롤프 헤커 교수

독일에서 발간하는 MEGA는 현재 114권 중 70권이 나왔다. 마르크스는 영어·독일어·프랑스어 3개 언어로, 엥겔스는 러시아어까지 4개 언어로 글을 썼다.

마르크스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유네스코가 인류 기록유산으로 선정한 고전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MEGA 한글판을 내는 것이다. 영국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있는 마르크스의 무덤을 입장료를 내고 찾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그 모순을 넘어서는 이들에게 해답을 줄 수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게 모두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을 찾는 출발점은 될 수 있다.”(강)
마르크스가 노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말한 부분도 MEGA에 나오나.
“그렇다.”(헤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던 프랑스 사회당의 다수파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한 표현이다.(마르크스가 마치 스스로 사상 전향을 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의미)”(강)
북한이나 중국 같은 현존 사회주의국가를 보면 마르크스가 뭐라고 할까.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중국이 식민지 상황에서 마르크스를 수용한 건 인정하지만 껍질은 사회주의적이나 내용은 마르크스가 얘기한 것과 많이 다르다.”(헤커)

카우츠키 ‘수정주의자’ 폄훼는 소련 영향

MEGA 발간을 독일 사회민주당의 카를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등이 주도했다. 1980년대 마르크스-레닌 원전이 국내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수정주의자’로 폄하되기도 했는데.
“소련 영향이 컸다. 카우츠키는 러시아혁명을 지켜보며 ‘그건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고 비판했고, 레닌은 사활을 걸고 이들을 공격했다. 엥겔스는 자신의 이론을 해석할 권리를 카우츠키에 넘길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강)
마르크스의 사인이 들어간 『자본』 초판본. 수십억원 넘게 팔린다

마르크스의 사인이 들어간 『자본』 초판본. 수십억원 넘게 팔린다

강 교수는 MEGA 덕분에 마르크스의 현대적 재해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화폐이론과 금융이론을 재구성해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있는 오타니 데이노스케(大谷禎之介)와 탈성장의 생태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에 도전하는 ‘커다란 변화’를 꿈꾸는 사이토 고헤이(斎藤幸平) 같은 학자가 대표적이다.

특히 1987년생 소장학파인 사이토 고헤이는 국내 번역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MEGA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연구노트에 주목했다. 거기서 『자본』에 포함되지 않은 마르크스의 아이디어와 갈등까지 읽어냈다. 고헤이는 『공산당선언』의 유물사관이 보여주듯 생산력 지상주의자였던 젊은 날의 마르크스가  『자본』 1권을 쓰고 난 뒤 말년에는 탈성장 코뮤니즘에 도달했다고 해석한다. “자본은 무한한 가치 증식을 목표하지만 지구는 유한하다. ‘저렴한 노동력’이나 ‘저렴한 자연’이라는 외부를 모두 소진하면 지금껏 해왔던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된다. 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일으킨 문제를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해결할 수 있을 리 없다. 해결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려면 기후 변화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이상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마르크스는 예수도 인문학자도 아니다”

물론 MEGA에 대한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경제학 연구자인 윤소영 전 한신대 교수는 “마르크스의 메모나 초고에 관심을 두는 건 마르크스를 인문학자로 보는 것이며 이는 과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며 “마르크스는 예수도, 인문학자도 아니다”라고 했다. 과학자 뉴턴의 초고가 아니라 최종 발표물이 중요한 것처럼 마르크스도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의 관심이 커졌다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이념도 몰락한 것 또한 사실이라는 설명도 했다. “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글로벌 행사가 많았다지만 사망 100주년 행사가 있던 1983년에는 비할 수 없이 초라했다.”

윤 교수에게 ‘시황제’의 중국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관해 물었다. 그는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자본주의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푸틴, 북한의 김정은은 파시즘 전체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파시즘 전조를 보이는 국가 자본주의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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