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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생명력에 경이 어린 시선...재독화가 노은님 화백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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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꽃과 새를 즐겨 그린 고 노은님 화백. [가나아트]

물고기와 꽃과 새를 즐겨 그린 고 노은님 화백. [가나아트]

물고기와 새, 꽃 등을 소재로 그림을 통해 힘찬 생명을 기운을 표현해온 노은님 화백이 18일 함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1970년 간호사로 독일 이주 #함부르크 미대 최초 입학 #함부르크 조형예술대 교수

노 화백은 1970년 독일로 이주해 정착한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독일로 건너갔다. 함부르크 시립외과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던 당시 간호장이 우연히 그의 그림들을 보고 병원에서 전시를 열도록 주선하며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그 전시를 계기로 73년 국립 함부르크 미술대학 회화과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했고, 독일 표현주의와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거장 한스 티만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돼 2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 정교수로 임용돼 20여년간 강단에 섰다. 또 바우하우스,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 평화 비엔날레 등에 초대됐다.

한국 작가로서는 드물게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됐으며, 2019년 11월 비독일 태생의 작가로는 처음으로 독일 미헬슈타트의 시립미술관에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됐다.

1970년 독일로 건너가 간호사로 일하다가 화가가 된 고 노은님 화백. [사진 가나아트]

1970년 독일로 건너가 간호사로 일하다가 화가가 된 고 노은님 화백.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무제, 1996, 종이에 아크릴, 28x64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무제, 1996, 종이에 아크릴, 28x64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찾아온 손님, 2017, 캔버스엔 아크릴, 160x224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찾아온 손님, 2017, 캔버스엔 아크릴, 160x224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화백.[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화백.[사진 가나아트]

노 화백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생명'이다.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점(點)은 그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과감한 붓질로 파랑·빨강·초록 등 원색으로 그려낸 고양이와 물고기, 새와 꽃, 개미 등엔 반드시 점이 찍혀 있다. 작가는 "점은 곧 눈(目)"이라며 "이것은 살아있는 존재, 즉 생명의 표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림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내가 큰 대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는 그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자연의 형상을 표현해왔다. "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한다. 모든 복잡함이나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아 있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는 신념에서다.

그는 매체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유화, 한지에 그린 흑백의 아크릴화, 설치미술, 퍼포먼스, 테라코타 조각,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인 아넬리폴렌(Annelie Pohlen)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 그의 작품을 극찬한 바 있다.

노 화백은 지난해 8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개막 3일 만에 초대형 두 점을 제외하고 작품이 완판돼 화제를 모았다. 그는 지난해 8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019년 암 진단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암이어도 괜찮다.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삶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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