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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도 품질도 OK” 중동·동구·남미서 잇단 러브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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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방위산업 왜 강해졌나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폴란드 국방부는 지난 7월 27일 한국의 K2전차 980대, K9 자주포 672문, FA 전투기 48대를 사들인다는 발표를 했다. 탄약운반 장갑차, 지원 전차, 탄약 등을 포함하면 총 규모가 40조원 이상으로 한국 방산수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방위산업 삼두마차 약진

이 같은 한국의 저력은 방산 삼두마차에서 나온다. 삼두마차는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디펜스, K2 전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 FA-50 전투기를 제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말한다. 물론 삼두마차 이외에도 단거리 미사일을 생산하는 LIG넥스원 등 한국 방산의 저변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K9 자주포는 이미 터키·인도·호주·핀란드 등 세계 8개국에 총 700여 문이 수출돼 세계 자주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사정거리가 40㎞에 달하고 명중도가 높아 세계 방산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폴란드는 국내 사정으로 수입 일정이 빨라져 8월 26일에 1차로 212문을 수입하기로 했다. 수출대금은 3조2000억원이다. 나머지 460문은 2차분으로 계약이 추진되고 있다.

한화디펜스·현대로템·KAI가 주도
제품 신속공급, 금융지원 등 장점

자주포·전차·경공격 전투기 인기
세계 8위 점유율, 계속 올라갈듯

리튬 잠수함, 사이버 장비도 유망
미래 내다본 투자전략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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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전차는 8월 29일 1차 인도분 180대가 4조4992억원에 본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안에 2차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전차 강국이던 미국과 독일은 현재 전차 생산을 중단한 상태여서 한국의 K2 전차가 성능도 좋아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 6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폴란드와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양국 국방부 장관이 서로 오가며 방산 수출외교를 벌인 것도 크나큰 도움이 됐다.

폴란드 이후 동유럽서 관심 폭발

이에 탄력을 받은 K2 전차는 노르웨이에서도 약 17억 달러 규모를 수입하는 데 관심을 보여 기대가 커지고 있다. 폴란드로의 무기 수출은 여타의 나토(NATO) 국가들, 특히 동유럽 국가에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여 한국 방산 수출의 분기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한국이 가성비를 앞세워 세계 방산시장의 틈새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한국 방산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가성비가 높다는 것은 미국·독일 등 방산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산 무기의 품질이 절대 뒤지지 않고 가격 부담은 없다는 뜻이다. 가성비는 한국 방위산업의 크나큰 경쟁력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국 특유의 신속한 공급 능력과 수출입은행을 통한 금융지원, 그리고 수입국이 원하면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유연성도 장점이다. 이 같은 강점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 방산은 이러한 지원 이외에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며 수입국을 만족하게 한다. 이같이 특유한 수출문화를 앞세워 한국은 세계 방산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방산 수출시장 점유율이 2017~2021년 사이 2.8%로, 세계 8위 수준에 이르고 있다.

폴란드만이 아니고 호주의 차기 장갑차 사업이 450대 규모로 약 75억 달러에 달하는데 차세대 장갑차로 불리는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장갑차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70여㎞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정확히 파괴할 수 있는 천무 다연장 로켓도 수출 예비품목에 올라 있다. 수출이 성사된다면 한국은 방산수출 세계 5위에 등극할 수 있다.

호주선 한국 장갑차 수입 거론

폴란드의 수출에서 괄목할 만한 일은 한국의 FA-50 전투기가 사상 처음으로 유럽시장에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FA-50은 1997년 사업을 시작한 고등훈련 연습기(KTX-2)를 경공격 전투기로 발전시킨 모델이다. 초음속 전투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초음속 고등훈련기가 필요한데, 영국 등 선진국에 돈을 주고 빌려서 조종사 훈련을 시켰다. 그래서 자체적인 고등훈련기를 만들자는 기획안이 수립됐지만, 외환위기가 터져 좌초될 뻔했다. 1조40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전투기 생산의 국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집념으로 고등훈련기를 완성했고, 이 훈련기에 공대지 미사일 등의 무기를 장착한 것이 FA-50 경공격 전투기다. 방위산업 종사자들이 국산화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과 옹고집이 있었기에 수출이라는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공개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개발 역시 FA-50과 모양이 똑같은 고등훈련기의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투기 엔진은 장기 도전 과제

FA-50은 단발 엔진이고 F-21 전투기는 쌍발 엔진인데 둘 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 엔진을 달고 있다. 엔진만큼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라 독자 개발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더구나 엄청난 예산이 들기 때문에 경제성을 따져 개발이 유보된 상태다. 결국 미국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인 분야가 전투기 엔진이다.

그렇다면 전차·자주포·FA-50 전투기 이외에 한국이 미래에 더 키워나갈 수 있는 방위산업은 무엇일까. 국가방위력도 높아지고 수출도 가능한 분야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물속에서 약 한 달 정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리튬이온 전지 잠수함이다. 세계의 보편적인 잠수함은 디젤 기름을 연료로 쓰는 잠수함인데 기껏해야 물속에 일주일 이상 잠수해 있기가 어려워 작전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 미국과 같이 핵잠수함을 쓰지 않는 나라들은 리튬이온 전지를 동력으로 쓰는 잠수함으로 교체될 전망이다. 일본은  잠수함 24척을 모두 리튬이온 전지로 교체 중이고, 한국도 실행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미래형 먹거리 주목해야

호주가 일본의 리튬이온 전지 잠수함을 사려고 협상을 벌였는데 호주 현지에서 생산해달라는 요구에 협상이 결렬됐다. 잠수함·군함 등 배를 만드는 조선산업이 세계 정상급인 한국의 리튬이온 전지 잠수함이 양산단계에 들어가면 수입국의 요구에 맞추어 현지 생산해 줄 수도 있어 미래의 방위산업으로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두 번째는 사이버 방위산업이다. 이스라엘은 2020년 사이버 산업 분야의 기술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만 해도 67억5000만 달러가 넘는다. 사이버 분야는 자국의 안보정보와 기업정보가 상대방 사이버 해킹에 당하지 않는 사이버 보안능력이 고도화돼야 한다. 또한 역으로 상대방의 사이버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해커들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데프콘(DEFCON) 대회에서 한국은 2015년, 2018년 독자적으로 우승했고 2022년에는 미국과 합작해 우승했다. 그만큼 사이버 강국이어서 향후 사이버 방위산업은 대표적인 수출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단거리 미사일도 성능 우수

세 번째는 사정거리가 짧으면서도 명중률이 높은 전술용 미사일이다.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에 2조6000억원 규모의 단거리 미사일 천궁2를 수출했는데 미국의 미사일보다 성능이 좋고 가격이 싸 UAE가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이 미사일은 201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 등이 협력해 개발했다. 가성비가 높아 한국형 패트리엇이라 불리는 요격용 미사일이다.

상대방 전차를 파괴하는 현궁 미사일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 수출되고 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동유럽 국가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물론 러시아는 지금 당장 침공을 멈춰야 하지만, 이번 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방위산업이 주목을 받게 되면서 유럽시장으로 전술 미사일의 수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품질 개량한 후속작 나와야

폴란드에 사상 최대의 방산물자가 수출된 것은 한국의 방위산업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됐다. 주로 미국과 러시아, 영국·프랑스에서 무기를 수입하던 나라들이 품질과 가격 면에서 한국의 무기를 평가해보니 놀라울 정도로 품질이 좋고 값 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공급 지연이 없고 부품 공급이 원활한 것도 K방산의 장점이다.

더 나아가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를 개량해 탄약 장전이 완전 자동화되는 K9A2 자주포로 미국과 영국의 개량형 자주포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기술은 늘 변천을 거듭한다. 그만큼 더욱더 품질이 좋게 개량형을 내놓으면 전차와 자주포에서는 늘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 잠수함과 사이버 분야는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세계 정상급의 방위산업 국가가 될 수 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