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학계 원로 백낙청 교수, 뉴라이트 진영 실명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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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진보학계의 원로 백낙청(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실명(實名) 비판의 화살을 보수쪽으로도 돌렸다. 백 교수는 지난 5월 진보학계의 좌장격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실명비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올해 1월 진보성향 계간지 '창비'의 신년사를 통해 '변혁적 중도주의'노선을 택할 것을 선언한 이후 백 교수의 발걸음이 왼쪽과 오른쪽을 넘나들며 빨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창비'편집인이기도 한 백 교수가 이번에 겨냥한 인사는 중도 보수쪽 핵심 이론가들이다. 최근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든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러시아대사를 지낸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등으로 대개 뉴라이트(신보수)로 간주할 수 있는 인사들이다. 백 교수는 17일 출간된 '창비'2006 겨울호에 기고한 '남남갈등에서 한반도 선진사회로-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를 통해 이들을 비판했다.

백 교수는 뉴라이트의 주요 이념인 '선진화'의 의미를 조목조목 캐물었다. 보수진영의 '선진화론'을 주도한 박세일 교수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백 교수는 박 교수가 "반(反)대한민국 세력만 빼놓고 모두 선진화 대열에 함께하자"고 했던 대목을 크게 문제삼았다. 그런 인식이야말로 그동안 한국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를 가로막아온 요소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신보수 진영의 선진화, 중도 노선은 결국 "남한만의 선진화가 얼마든지 가능한데 일부 반대한민국 세력 때문에 안되고 있다는 발상"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 지성계의 후진성을 말해주는 징표"라고도 꼬집었다. 이어 그는 "선진화는 단순히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 평균치의 증대를 뜻하지 않는다"며 "정말 남들보다 앞서가는 훌륭한 사회로 진화하는 것이 선진화다"라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또 보수 진영이 내세우는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백 교수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기억은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수구보수가 독점하다시피 해왔지만 87년 이후, '5월 광주'도 '6월 항쟁'도 모두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국가 정체성의 의미가 확장됐다고 강조했다.

안병직 교수와 관련해선 "선진화와 통일은 서로 배치되기 때문에 당장은 6.15공동선언을 폐기하고 선진화를 유일한 국정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발언한 대목을 문제삼았다.

백 교수는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다시 높아진 현시점에서도 대한민국의 국제신인도가 그나마 유지되고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6.15선언과 6자회담의 저력이 다시 입증된 것"이라며 "그런데도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미.일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라는 소란스러운 요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보수진영이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보수 고유의 과제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백 교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중도의 길은 "선진화와 통일의 병행"이라고 밝혔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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