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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월북몰이’ 정황, 문 전 대통령 답할 차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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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30면

감사원 “사실 은폐, 섣부른 단정 드러나”

서훈·박지원 등 20명 검찰에 수사 의뢰

야 “청부감사” 반발…엄정한 수사가 답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사건에 대해 감사원이 13일 발표한 중간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조직적·의도적으로 ‘월북 몰이’를 한 정황이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국정원·해경 등은 이씨의 북한 해역 표류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매뉴얼에 정해진 초동 조치 대신 지켜보기로 일관했다. 이씨가 북한군 총격에 숨지는 상황을 맞자 관련 증거를 은폐했다. 이 같은 감사 결과에 따라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20명이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평소대로 오후 7시 30분 퇴근했다. 이어 오후 10시 이씨의 피살 사실을 보고받자 3시간 뒤 관계 장관 회의를 열었다. 회의 직후 관련 부처들과 해경은 이씨를 ‘월북자’로 몰기 시작했다.

사건 전모가 불분명한데도 서 전 실장은 “자진 월북으로 일관되게 대응하라”는 방침을 하달했다고 한다. 서 전 장관과 박 전 원장도 회의 직후 각각 관련 문건 60건과 46건을 폐기하도록 지시했다. 한마디로 서 전 실장 등은 국민이 북한군 총에 맞고 불태워지는 참상을 방조했고, 이후 고인을 ‘월북자’로 규정하라고 지시했으며, 불리한 자료는 최대한 파기했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이씨의 피살 전후 이씨가 실족해 표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던 국방부·해경·국정원이 관계 장관 회의 이후 일제히 ‘월북’으로 입장을 뒤집은 것도 경악할 일이다. 또 “이씨는 배에 있던 국내산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이씨의 구명조끼엔 국내산 조끼엔 없는 한자(漢字)가 적힌 것으로 드러났다. 김홍희 당시 해경청장에게 이 사실이 보고됐음에도 “난 안 본 걸로 할게”라고 답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기가 막힌 일이다.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되는 대한민국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독자적으로 ‘월북 몰이’를 기획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실 은폐와 문건 파기, 월북 단정이란 일련의 과정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련됐을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씨 피살 3시간 전쯤 표류 사실을 서면 보고받았고, 이후 이씨가 사살된 사실도 1시간 만에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문 전 대통령이 뭘 했는지,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이 서면 질의를 요청하자 문 전 대통령은 “무례하다”면서 거부했다. 나라를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행태로 판단된다. 문 전 대통령은 이제라도 유족과 국민 앞에 당시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

감사원과 검찰의 엄정한 자세도 필수적이다. 정치적 논란 여지를 차단하고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국정감사장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에게 부적절한 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는 등 감사원의 매끄럽지 못한 태도가 논란을 키운 상황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에 주파수를 맞추고 정권 입맛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 낸 ‘청부’ 감사”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감사원과 검찰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정권 입김을 배제한 독립적인 감사와 수사로 진상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또 다른 정쟁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야 한다. 지금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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