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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생활비 재앙, 난방 안 켜고 설거지 물로 정원 가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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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14면

런던 아이 

지난 1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생활물가 급등에 항의하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10월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EPA=연합뉴스]

지난 1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생활물가 급등에 항의하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10월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EPA=연합뉴스]

이달 말 영국 런던에서는 ‘엄마들의  행진(March of the Mummies)’이 열린다. 오는 29일 열리는 이 행사에는 만 명 넘는 엄마들이 가족과 함께 시위에 참여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에 육아비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엄마들의 행진’에서는 모든 아이에게 양질의 저렴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부모의 기본 업무 환경을 탄력근무제로 지정하고, 적절한 유급 육아휴직을 제공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평균 임금 부부 소득 22% 육아에 지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으로 런던 주유소에서도 물가급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AP=연합뉴스]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으로 런던 주유소에서도 물가급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의 우유 가격은 지난해 9월 1파인트(약 570㎖) 당 55펜스(약 870원)에서 올해 9월 95펜스(약 1503원)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내야 할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영국노동조합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아이 1명이 어린이집에 내야 할 비용은 연평균 7212파운드(약 1140만원)로 2010년 4992파운드에서 2000파운드 이상 늘었다. 영국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내는 비용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더 비싸다. 반면 법정 출산휴가의 급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영국은 유급 출산휴가 기간 동안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한다.

영국에서 부부가 평균 임금을 받는 경우 연소득의 22% 정도를 육아에 지출하는데, 이는 한국의 3%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만약 부부가 최저 임금을 받는다면, 육아비에만 연소득의 31%을 지출해야 한다. 영국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약 200만 명이다. 영국의 아이들은 만 4세에 초등학교(primary school)에 입학하기 때문에 영국 아이들이 이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기간은 보통 만 2~4세 때다.

영국인의 주 식료품 가운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우유만이 아니다. 올해 초 한 보고서에 따르면 파스타 가격은 전년 대비 50% 상승했으며, 신선 농산물은 12.1% 올랐다. 영국소매컨소시엄닐슨IQ(British Retail Consortium-NielsenIQ) 지수에 따르면 식품 가격은 9월에만 5.7% 상승했다.

영국 육아 비용 급등은 최근 ‘생활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의 일부일 뿐이다. ‘생활비 위기’는 물가 상승이 소득 증가를 앞지르는 상황을 부르는 말이다. 이는 많은 영국 가정이 음식이나 난방처럼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은 지난달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와 콰시 콰텡 재무부 장관이 소득세를 20%에서 19%로 인하하는 내용의 정책을 발표하면서 더 악화했다. ‘미니 예산’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고소득층에게 45%의 소득세율을 없애고, 의료 보조 세금과 국민건강보험(National Insurance) 인상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런 정책은 큰 반발에 부딪혔다. 대다수 국민이 생계비 위기에 허덕이는 동안 일부 극소수의 최고 부유층에만 혜택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감세 결정으로 파운드화 환율은 1.0327달러로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파운드화 가치의 폭락이 너무 심각해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내년 영국 내 생활비를 0.5% 증가시킬 수 있다고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까지 나서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자 열흘 뒤 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안을 철회했다. 비록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멈췄지만, 파운드화의 가치는 여전히 1.10달러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생활비 위기는 2021년 본격화됐다. 영국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다른 나라들처럼 코로나19, 반도체 부족, 에너지 위기, 공급망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세계 경제를 강타한 요인들에 의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더해 영국은 브렉시트로 인한 충격까지 겹쳤다. 2020년 브렉시트 이후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면서 외국인 노동력이 부족해졌다. 이로 인해 세금 부담이 늘었고, 물가는 상승했으며, 정부 지원은 축소되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영국의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를 기록하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영국인의 급여 수준은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실업자들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재정 지원을 덜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각국이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때도 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담 때문에 확대 재정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지난 5월 국가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영국 성인의 77%가 생활비 위기를 걱정하고 있으며 52%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지난 2월에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 내 100만 명 이상의 성인이 먹을 음식을 살 여유가 없던 날이 한 달에 최소 하루 이상 있었다고 답했다.

연료 가격의 상승은 이러한 현실을 더 악화시켰다. 영국은 연료를 제대로 비축해 두지 않은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연료 가격이 상승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영국 가정은 이미 연간 평균 1400파운드(약 220만원)에서 2500파운드(약 400만원)를 난방비와 전기료로 내고 있다. 난방비는 10월에 최대 80% 인상될 예정이었다. 만약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겨울 많은 사람 죽고 고통 받을 것”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으로 수퍼마켓에서도 물가급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AP=연합뉴스]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으로 수퍼마켓에서도 물가급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AP=연합뉴스]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영국 정부는 일단 물러섰다. 향후 2년 동안 에너지 가격을 최대 2500파운드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래도 영국은 독일, 덴마크와 함께 난방 및 전기 요금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다.

런던에 살고 있는 존과 메리는 60대로 담보 대출 없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 존은 회사의 고위 관리직이며, 메리는 수십 년 동안 공립학교 교사로서 일을 했기 때문에 정부의 연금을 받고 있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그들은 저축한 자금이 꽤나 있으며, 매년 여러 차례 해외 휴가를 갈 금전적 여유도 있다. 이들 역시 생활비 위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존은 “연료 가격 상승으로 집의 온도를 0.5도 낮춰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차를 운전할 때마다 기름값을 생각해서 꼭 운전을 하는 게 맞는지 신중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 가격도 상승해서 정원 가꾸는 것도 부담이 되고, 이제 설거지를 할 때마다 싱크대에 물을 담아 사용하고, 이 물을 버리지 않고 식물에 줍니다”라고 말했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이들의 주변 지인들은 가처분소득을 심각하게 줄이면서 매달 수백 파운드씩 늘어나는 원리금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30대 초반인 한나와 롭은 금융과 홍보 분야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자녀도 없고 침실이 3개 딸린 자신들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소득 상위계층에 속한다.  한나는 “생활비 위기는 우리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꽤 운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난방 사용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대한 난방을 켜지 않기 위해 가능한 집안에서도 여러 겹의 옷을 입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난방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가능한 가장 낮은 온도로 설정하죠”라고 말했다.

존과 메리, 한나, 롭은 모두 수입이 좋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자가 소유자이다. 소득계층의 반대쪽 끝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1400만 명 이상의 영국인들이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다.  약 6700만 명의 인구가 있는 나라에서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런던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는 이번 겨울 최소 130만 명이 추가로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이제 음식과 난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자선단체 디퍼(Depher)의 제임스 앤더슨은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겨울에는 많은 사람이 음식과 난방 중 하나를 선택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받을 것입니다. 힘들다고 호소하는 전화를 수없이 많이 받았어요.”

번역: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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