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수녀·비구니·교무, 함께 길을 떠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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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

조연현 글.사진, 비채

286쪽, 10900원

삼소회(三笑會)란 모임이 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으로 꽤 알려진, 여성 수도자들의 모임이다. 1988년 장애인 올림픽을 앞두고 가톨릭과 성공회 수녀, 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들이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이들 중 16명이 올초 세계 성지순례에 나섰다. 전남 영광의 원불교 성지를 시작으로 인도 석가모니 대각지,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 이스라엘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성지, 이탈리아 아시시와 바티칸 교황청을 19일간 방문했다.

믿음과 생활방식, 심지어 옷차림까지 다른 이들로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고기를 많이 먹는군요"란 식탁 위의 신경전은 소소한 일이었다. 원불교의 가르침 중 때를 가리지 않고 매사 마음을 챙기라는 '무시선(無時禪)'을 두고 "시선 둘 곳이 없다는 뜻인가"라고 물은 '무례' 등 곳곳에 시한폭탄이 깔린 듯한 길이었다.

그러나 결론을 미리 말하면 자칫 어색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끝났다. 사랑과 용서, 이해가 바탕이 된 결과였다. 이슬람 사원에서 전통에 따라 모두 두건을 쓰고, 수녀와 스님이 함께 십자가를 지는 체험을 하고, 한국 가톨릭에서 고대하던 두 번째 추기경이 발표되던 현장에선 서로에게 두손 모아 축하를 보내는 광경이 연출됐다.

어느 스님 말마따나 "스님은 깎은 중, 수녀님은 (베일을) 쓴 중, 교무님은 (머리) 긴 중, 생긴 건 달라도 모두 중"임을 자각한 덕분이었다.

동행했던 신문기자가 정리한 글은, 깊은 이해와 지식이 바탕이 되어 읽는 맛이 뛰어나면서도 메시지 또한 묵직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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