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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6.8% 하락, 파운드·엔화보다 더 떨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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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떨어지는 원화가치가 ‘마이 웨이’ 중이다. 전 세계 다른 통화와 비교해 하락 속도가 더 빠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불러온 강달러에 보폭을 맞춰 내려가던 원화값이 궤도 이탈을 한 모양새다. 지난달에는 주식과 채권에서 모두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며 원화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원화값 하락에 자본 유출 우려도 커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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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원화가치(달러당 1435.2원)는 지난 8월 말(달러당 1337.6원)보다 6.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4.2% 뛰었다. 달러 가치의 상승 폭보다 원화가치 하락 폭이 더 컸다.

원화값의 낙폭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통화를 통틀어서도 유독 컸다. 선진국 통화 중 유로화(-3.4%)와 영국 파운드화(-5.6%), 일본 엔화(-4.7%)가 모두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하락 폭은 원화보다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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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난달 감세 정책을 둘러싼 혼선으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홍역을 앓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고 있는 일본의 엔화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은 엔화값 급락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 개입에도 나서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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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달러의 질주 속에서 신흥국 통화도 원화보다는 선방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5.2%)와 중국 위안화(-3.7%), 인도네시아 루피아화(-3.3%), 인도 루피화(-3.2%), 브라질 헤알화(-2.2%), 튀르키예 리라화(-2%) 등의 낙폭은 원화보다 적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원화가치는 달러값 상승에 보폭을 맞춰 내려왔다. 지난 8월 중 미 달러값은 2.6% 올랐는데, 원화값은 2.9% 하락했다. 당시만 해도 엔화(-4.1%)와 파운드화(-4.6%)보다 통화가치가 덜 떨어졌다. 하지만 Fed 등 긴축 강화와 세계 경기 둔화 우려, 무역수지 적자 폭 확대 등으로 지난달 원화가치는 다른 통화에 비해 더 떨어졌다. 대외 환경 악화와 함께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지면서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경기 하락 외에도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격화 등 각종 악재가 쌓여 시장 참가자가 원화를 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 약세도 원화값에는 부담 요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9월 들어서 원화가 달러 강세보다 더 약세가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원화는 중국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도 여겨지고 있어 중국이 나빠지면 무역이나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자금의 한국 엑소더스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9월 외국인 증권 투자자금은 22억9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지난 6월(-7억8000만 달러) 이후 3개월 만의 순유출 전환이다. 특히 주식(-16억5000만 달러)과 채권(-6억4000만 달러) 시장에서 모두 돈이 빠져나갔다. 주식과 채권 자금이 동시에 빠져나간 건 2020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리기 어렵다는 신호를 주면서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가 훨씬 커졌다”며 “금리 역전 폭이 커져 외국인 자금 유출이 본격화될 경우 충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연말까지 원화가치가 ‘1달러=1500원’ 선까지 밀릴 수 있다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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