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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형 죽이고 "난 입양아"…범행전 '심장 위치' 검색한 男 최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택에서 부모와 형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31)씨가 지난 2월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자택에서 부모와 형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31)씨가 지난 2월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피해자는) 피고인의 친부모가 맞습니다.”
 자신의 부모와 형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모(31)씨는 끝까지 “양자로 입양돼 학대를 받아 왔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답을 내렸다. 서울 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김동현 부장판사)는 13일 김씨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하고 10년 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유전자(DNA) 감정, 가족관계 서류, 주변 인물 진술, 정신과 진료기록 등에 의할 때 피고인 주장은 믿기 어렵다”며 “피고인 주장 외에는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학대하였다는 증거도 없을뿐더러, 설령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학대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한 살인 범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2월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자신의 일가족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존속살해 등)로 구속 기소됐다. 경찰 수사 결과 김씨는 범행 한 달 전 여러 차례 살인죄의 형사재판 소요 기간을 인터넷에 검색하고, 범행 이틀 전 양천구의 한 편의점에서 흉기 등 범행 도구를 미리 사놨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가족들이 모두 집에 모인 때를 노렸고, 범행 직전 스마트폰으로 심장 위치를 미리 검색한 뒤 잠든 피해자들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잠에서 깬 김씨의 어머니가 친형을 공격하는 김씨를 제지하기도 했다. 김씨는 범행 직후 119에 전화해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김씨의 부모와 형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조현병 진단…심신미약 인정

 법원은 김씨가 범행 당시 정신 질환으로 심신 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오랜 기간 앓아 온 조현병의 영향에 의하여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범행 동기, 피고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의 내용과 정도 등을 살펴보면, 형벌을 응보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피고인이 한 행위의 중대성을 오롯이 피고인 책임으로 귀속시키기는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씨가 지난 2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씨가 지난 2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씨는 2010년도와 2016년도에 각각 편집성 정신분열병과 조현병을 진단받아 통원·입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치료감호소 역시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현실검증력이 손상된 조현병의 상태에 있고 병에 걸렸다는 자각이 없으며 향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 적극적인 정신의학적 입원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2009년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이로 인해 '가족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범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별다른 사회 활동 없이 집에서 생활하던 김씨는 지난해 3월 자택 인근에서 극단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6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고 모두 가족의 책임으로 돌린 것 등을 감안하면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해야 한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개인을 위해서나 다른 수감자를 위해서나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도 검찰이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아 이를 명령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치료감호는 정신질환 범죄자를 국립법무병원에 수용시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으로, 현행법상 검사만이 청구할 수 있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기간에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노력할 것 등 준수사항도 부과했다.

 정신질환 등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피의자(피고인)에 대한 정신 감정을 정신과 전문의에 의뢰할 수 있다. 피감정인은 약 1개월간 병원에 유치돼 개인 면담 등을 통해 정신 상태를 판정받게 된다.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을 할 능력이 미약하면 ‘심신 미약’ 판정을 받는다. 형법상 심신 미약은 형의 감경 사유다.

 최근 형사 사건에서 심신 미약 판정 및 이에 따른 형의 감경은 갈수록 엄격해지는 추세다. 실제로 2020년 자신과 교제를 거부한 여중생을 살해해 기소된 고교생 A군(17)은 재판에서 지적장애로 인한 심신 미약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난해 9월 징역 장기 12년에 단기 5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A군이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며 피해자에 접근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세운 점 등을 들며 “‘경도 지적장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결여되거나 감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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