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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32회 불법촬영, 연대 의대생 실형…의사 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캠퍼스 내 여자화장실에서 여학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구속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생 A씨가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날 재판 결과로 오히려 연세대 측의 징계절차가 중단돼 A씨의 의대 복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뤄졌다.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뉴스1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뉴스1

 1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공성봉 부장판사는 A씨에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반포, 성적 목적 다중이용장소 침입)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치료프로그램 이수 및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 6월~7월 네 차례에 걸쳐 연세대 의과대학 여자화장실에서 들어가 총 32회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7월 4일 현행범 체포됐지만 경찰 조사 단계에서 범행을 부인하다 지난 7월 7일 구속됐다.

 공 판사는 이날 “재학 중 여자화장실에서 피해자를 불법촬영하는 등 범행 장소, 방법, 피해자와의 관계, 촬영 신체부위 등으로 볼 때 죄가 가볍지 않다. 이는 사회에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사회 전체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다만 공 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를 한 점, 사회적 유대가 깊고 그 가족이 처벌불원을 탄원하고 있는 점, 촬영물이 유포된 정황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실형 선고에 연세대 “당장 징계는 못해”

개강 첫날인 2일 오전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대면 강의를 듣기 위해 캠퍼스를 오가고 있다. 최서인 기자

개강 첫날인 2일 오전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대면 강의를 듣기 위해 캠퍼스를 오가고 있다. 최서인 기자

 이날 실형 판결로 진행중이던 A씨에 대한 연세대학교 의료원의 징계절차가 중단되는 아이러니도 벌어졌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관계자는 “징계 과정에서 학생을 대면해 조사해야 한다는 학칙이 있는데 당사자가 구속돼 더 이상의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형기를 마친 뒤에야 징계위원회를 재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대응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생 박모(26)씨는 “학교가 성 관련 사건들에 미온적인 태도인 것을 차치하더라도 형기를 마친 뒤에야 징계하겠다는 건 지나치게 안일한 태도”며 “사건 발생 직후 조사와 징계를 차일피일하다 이제야 학칙 운운하는 건 처벌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현재 A씨는 2학기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다. 향후 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라 향후 재입학이 가능한 제적 처분, 재입학이 불가능한 출교 조치 등 징계 수위가 정해질 예정이다. 연세대 학칙은 징계위에 징계가 요청된 학생은 자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출교조치되면 연세대에는 재입학할 수 없지만 A씨가 의사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2011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하고 불법 촬영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학생 3명이 고려대에서 출교 조치됐지만 이중 1명은 2년 6개월 형기를 채운 뒤 성균관대 의대에 입학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성범죄 전력자라도 의사 활동은 가능 

서울서부지법 전경

서울서부지법 전경

 현행 의료법상 성범죄 전과가 있어도 의대 졸업자라면 의사가 되는 데 장애가 없다. 의료법 8조는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및 의료 관련 15개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성범죄 전력자는 결격 대상에서 빠져있다.

 과거에는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었지만 2000년 법이 개정됐다. 이후 아동청소년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범죄 전력이 있으면 10년간 의료기관 취업이 불가했지만,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성범죄 전력만으로 10년간 일률적으로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현재는 A씨에 대한 1심 재판처럼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면서 자격정지 처분을 함께할지 여부와 그 기간을 함께 판단하는 것만 가능한 상태다. 지난해 국회에 강력범죄 전과자가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없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료분야 전문변호사인 박호균 변호사는 “변호사, 공무원 등 다른 직업군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일정기간 직을 박탈하게 돼 있다”며 “성범죄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강도 등 셀 수 없는 형사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회수할 수 없는 현행법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분야 전문인 정혜승 변호사는 “의료법 개정 방향이 일률적으로 의사직 종사의 길을 차단하는 형태라면 또다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며 “현행법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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