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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생활이 안된다" 월급제 때문에 택시기사 안한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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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부가 최근 심야택시 승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호출료 인상, 부제 해제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택시 업계에서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택시 산업이 침체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인 전액관리제(월급제)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호출료만 올려 결국 시민 부담만 키울 게 뻔하다는 게 업계 등의 주장이다.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납금제 없앴더니 되려 처우 열악"

지난달 열린 ‘서울시 택시요금정책 개선 공청회’ 당시 서울시는 연말을 앞두고 택시대란이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서울시는 택시 승차난을 풀려면, 7000대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있다. 하지만 현 ‘월급제’가 유지되는 한 기사 소득을 늘리기엔 한계가 있어 택시 증차 여부는 불투명하다. 택시업계는 월급제 때문에 택시기사들이 배달업이나 택배업계로 떠난 것으로 분석한다.

법인택시 기사 월급제(전액관리제)는 기사가 번 운송수입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는 대신 노·사가 협약한 월급을 받는 것을 말한다. 서울 시내 법인택시는 2만2603대로 전체의 31%를 차지한다. 전액관리제는 2020년 1월 시행됐다. 날마다 버는 돈에서 13만원 이상을 회사에 내고 나머지를 기사가 갖는 사납금제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 사납금제는 운전자 과속과 장시간·졸음 운전 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액관리제가 시행된지 3년이 됐지만 현장에서는 되려 ‘전액관리제 폐지·사납금제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액관리제 도입 이후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법인택시 종사자 수가 최근 3년 새 만 명 가까이 줄은 데는 전액관리제도 영향을 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택시 기사 김모씨의 지난달 급여명세서. 김씨는 평소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11시간을 운전해 월 230만원 안팎을 번다. 하지만 지난달엔 추석 연휴가 껴 있어 운전을 쉬었고 기준금을 채우지 못한 만큼 월급에서 공제(현금가불 항목 등)가 돼 실지급액은 160만원 안팎이 됐다. 법인택시가 사실상 전액관리제가 아닌 '변종 사납금제'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사진 김씨 본인 제공

택시 기사 김모씨의 지난달 급여명세서. 김씨는 평소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11시간을 운전해 월 230만원 안팎을 번다. 하지만 지난달엔 추석 연휴가 껴 있어 운전을 쉬었고 기준금을 채우지 못한 만큼 월급에서 공제(현금가불 항목 등)가 돼 실지급액은 160만원 안팎이 됐다. 법인택시가 사실상 전액관리제가 아닌 '변종 사납금제'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사진 김씨 본인 제공

"암암리 사납금제 운영 회사로 이직" 

택시기사 허모(62)씨는 “(전액관리제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돼 한두 달 만에 그만둔 경험이 있다”며 “암암리에 ‘사납금제’를 운영하는 회사로 옮겼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뿐 아니라 사업자 상당수도 전액관리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난 5일 발표한 ‘전액관리제 시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시 사업자 가운데 90.8%, 기사는 64.7%가 전액관리제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택시 종사자 “실질소득 감소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액관리제에서는 기존 사납금제와 달리 성과금(초과금)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실제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 택시 기사 임금소득이 35만원(256만원→221만원) 줄어들 때 소득세와 4대 보험료를 포함한 간접비는 13만1000원(14만4000원→27만5000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액관리제에서 ‘변종 사납금’도 택시 기사 주머니 사정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매일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내는 ‘사납금’이 전액관리제에서는 월마다 내는 ‘기준운송수입금(기준금)’으로 이름만 바뀌고, 이를 채우지 못했을 땐 기본급이 깎인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서는 기사가 운행시간을 주 40시간 이상만 채운다면 기준금 미달액 공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상당수 회사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전액관리제하 기준금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하게 되는 고정급·간접비(4대 보험료·퇴직금)가 반영됨에 따라 사납금보다 오히려 많다. 사납금제하에서 회사에 매일 14만7000원을 납부하던 기사가 전액관리제 하에서는 16만7000원(월 435만원)을 납부해 부담이 커진 셈이다.

택시 사업자 “가동률 32%, 유지·보수비 감당 못 해”

택시 사업자가 전액관리제에 대해 불만을 갖는 이유는 소득이 감소한 택시 기사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법인택시 가동률은 32%대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회사 택시 10대 중 7대가 주차장에 서 있다.

오봉훈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서울본부 사무처장은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 기준금도 올라가고 성과금도 회사와 기사가 배분하니 처음에는 좋아 보였지만 결국 기사가 다 떠나가 회사가 운영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서울시 시간별 택시 수요·공급 현황. [사진 국토교통부]

서울시 시간별 택시 수요·공급 현황. [사진 국토교통부]

사납금제 부활·리스제 도입?

현 전액관리제 대체 방안으로는 사납금제 부활이나 리스제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각각 장단점은 있다. 사납금제는 기사들이 사납금을 납부하고 나머지 수익을 온전히 갖게 됨에 따라 근로 의욕을 고취하는 대신 고정 월급이 없었다. 또 회사 사납금이 올라가면 기사 몫이 적어지는 만큼 납부금을 어느 정도로 할지도 고민거리다.

리스제는 법인택시 회사가 운송사업 면허와 차량을 택시 기사에게 임대하고 일정 금액을 임대료로 받는 방안이다. 기사 수입이 증가하고 신규인력 유입이 가능하지만, 자칫 ‘불법 도급택시’로 변질할 수 있단 우려가 있다. 리스제 계약자 이외 택시 운전자격이 없는 사람도 운전할 수 있단 것이다. 임대료가 과도하게 설정되면 기사의 처우 개선 역시 불가능한 것도 맹점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 협의체 구성을 통해 법인택시 리스제와 전액관리제 개선 등을 검토하겠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연말에 심야 택시대란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에 리스제 도입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택시 운행 대수를 2019년 수준인 2만 7000대까지 최대한 끌어올려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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