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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아즈의 태극기, 서울의 욱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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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프랑스 파리에서 차로 약 3시간 달리면 닿는 루아르주(州). 15~16세기 프랑스 정치 중심지로, 크고 작은 성(城) 1000여 채가 몰려 있다. 그중 국왕 거주지였던 앙부아즈성에 지난 8일 태극기가 게양됐다.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한불클럽·불한클럽 참석자들을 반기기 위한 성주(城主) 프레데릭 뒤 로랑의 환대였다. 성(城)의 600여년 역사에서 태극기가 펄럭인 건 처음이다. 그는 “한국과 더 많이 교류하고 싶다”며 “서울 고궁과 자매결연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성에서 약 500m 거리엔 클로 뤼세라는 저택이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이 저택의 소유 가문을 대표하는 프랑수아 생 브리는 한불클럽에 한국어로 제작된 저택 안내 책자를 내밀며 “한국과 교류를 확대하고 싶어 만들었다”고 말했다.

앙부아즈 성에 지난 8일 나란히 게양된 태극기와 프랑스 삼색기. 전수진

앙부아즈 성에 지난 8일 나란히 게양된 태극기와 프랑스 삼색기. 전수진

앞서 6~7일 수도 파리에서도 프랑스의 관심과 환대는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1855년부터 외교의 심장부 역할을 해온 키도르세 외교부 청사에 한불클럽을 초청했다. 프랑스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에 ‘키도르세’라는 드라마가 있을 정도로 추앙받는 공간이다. 오찬을 주최한 투자담당 장관은 한불클럽 인사들의 면모를 미리 숙지해 각각 맞춤 인사를 보이는 정성을 보였고, 한국어로 “건배”라며 와인 잔을 들었다. 이렇게 프랑스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한국어 안내 책자가 인쇄되며, “건배”가 울려 퍼질 즈음, 한반도의 북한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핵 훈련을 하고, 한국의 제1야당 대표는 ‘욱일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한반도 욱일기 진주설”을 주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장진영 기자

“한반도 욱일기 진주설”을 주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장진영 기자

한불클럽의 이번 회의는 외교·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프랑스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협력과 발전을 업그레이드할 호기(好機)임을 일깨웠다. 그렇다고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음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정부와 민간이 각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한국의 국가 매력도를 높여야 할 때다. 정작 이 추동력의 중심이 돼야 할 용산과 여의도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철 지난 친일팔이를 하는 민주당은 한·미·일 군사훈련을 두고 “욱일기를 단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다”는 억지 논리를 폈다. 이 논리가 왜 비논리적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 문제는 여권의 대응 역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라는 점.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만든 욱일기 프레임에 갇혔다. 큰 비전과 넓은 안목으로 한국의 가능성을 가늠하고 고양할 논리가 안 보인다. 욱일기 중심의 친일 논쟁은 그 자체가 반한(反韓)이다. 국력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앙부아즈성에 태극기가 휘날릴 시간은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