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TSMC의 역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삼성전자가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왕좌를 탈환한 지 불과 1년 만에 이 자리를 대만업체에 내줄 전망이다. 대만의 TSMC는 올해 3분기에 매출 6131억4300만 대만달러(TWD·약 27조54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8%나 늘었다. 반면 삼성전자의 3분기 반도체 매출은 24조~25조원, 인텔은 154억9000만 달러(약 22조원)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TSMC는 사상 처음으로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분야 1위에 오르게 된다. TSMC는 이미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업계 1위에 올라있다. TSMC의 시가총액은 515조원(7일 기준)으로 삼성전자(336조원)와 인텔(150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반도체는 정보 저장용인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 처리용인 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흐름에 민감하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3개 분야로 나뉜다. 우선 삼성전자나 인텔처럼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는 종합반도체회사가 있다. 또 퀄컴·AMD같이 생산시설(fabrication) 없이(less)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가 있고,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가 있다. 특히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어들긴 했지만 파운드리 시장은 아직도 뜨거운 편이다. 맞춤형 제품을 생산해서 시황에 덜 민감하고 안정적이어서다. 또 차량용 반도체는 여전히 공급 부족인 데다 애플·구글·테슬라 등 반도체를 만들지 않던 회사까지 반도체 설계에 뛰어들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올해 986억 달러에서 2025년엔 1456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자료 옴디아).

반도체 세계 1위로 올라선 TSMC
35년 파운드리 생산, 삼성 등 제쳐
대만, 개발·인력·세제 전폭 지원
한국 ‘반도체특별법’은 국회 표류

TSMC가 올해 3분기에 세계 반도체 1위(매출 기준)에 오를 전망이다. 대만 신주에 있는 TSMC 본사 로고. [연합뉴스]

TSMC가 올해 3분기에 세계 반도체 1위(매출 기준)에 오를 전망이다. 대만 신주에 있는 TSMC 본사 로고. [연합뉴스]

TSMC는 최초의 파운드리 업체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에서 근무했던 모리스 창이 1987년 대만 정부 등이 출자한 자본금으로 세웠다. 당시 대만은 생산 능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미국 등 경쟁국보다 설계 능력이 뒤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비즈니스 모델이 고객이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만 하는 파운드리였다. 하도급 회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35년간 한 우물만 팠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 아래  위탁 생산 외에는 설계 등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력은 쌓였고 고객과 신뢰는 두터워졌다. 고객과 함께 성장하다 보니 변방의 반도체 회사는 어느새 굴지의 회사로 올라섰다. 여기에 기술 유출을 꺼리는 팹리스 업체가 경쟁사가 될 수 있는 종합반도체업체보다 파운드리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TSMC가 53%, 삼성전자가 16% 내외로 두 회사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주요 이유다.

TSMC는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약자다.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라는 뜻이다. 회사 이름에서 느껴지듯 공기업에서 출발한 이 회사에 대한 대만 정부의 지원은 강력하다. 대만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미래산업의 경우 핵심기술부터 인력·연구개발·세제까지 거의 전 분야를 연계해 종합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의 법인세 부담률(2019~2021년 평균)은 대만이 14.1%로 한국(26.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 단위로 보면 TSMC는 10.9%로 삼성전자(27%)의 40% 수준이다. 또 해외 고급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소득이 300만TWD(약 1억3000만원) 이상일 때 초과분의 절반에 대해서만 과세한다. 그러다 보니 매출액 10억 달러를 넘는 반도체 기업 수는 대만이 28개사로 한국(12개)의 2.3배에 달한다(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끊임없는 노력, 유리한 시장 상황,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어우러져 TSMC는 창립 후 35년 만에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2019년 TSMC를 넘어서겠다고 선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경쟁력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경기 침체 여파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데다 TSMC는 파운드리 하나만으로 역전했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을 지원할 반도체특별법은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대만 기업은 온 국가가 똘똘 뭉쳐 전진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은 개별 기업 혼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위기다. 힘겨운 도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