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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돈스파이크에 '이 분'까지…중독될까 겁나는 '마약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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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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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멤버였던 박유천은 배우로도 성공한 스타다. 음악과 연기 능력만큼 출중한 외모로 팬들을 몰고 다녔다. 그런데 반듯한 외모와는 달리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압권은 마약 투약. 2019년 전 연인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국과수의 체모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구속영장이 신청될 때까지도 혐의를 부인했다. 실질심사 직전 그의 변호인은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필로폰이 체내에 들어가 검출됐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안 했다’와 닮은꼴 화법에 세상은 경악했다.

결국 그는 ‘연예계 은퇴’ 선언을 했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스리슬쩍 연예활동을 재개했다. 이달에는 그가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전 소속사와의 법적 분쟁 때문에 실제 개봉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적어도 마약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연예인 마약 사건, 호기심 자극
경찰, 언론 동행 강남 클럽 단속
코미디 같은 단속에 실적은 ‘0’

10월 7일 밤 서초경찰서·서초소방서·서울시청·서초구청 공무원들이 합동 점검 및 단속을 위해 서울 강남의 한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7일 밤 서초경찰서·서초소방서·서울시청·서초구청 공무원들이 합동 점검 및 단속을 위해 서울 강남의 한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돈스파이크라는 예명을 쓰는 김민수는 꽤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편곡자다. 근래에는 고기 먹는 영상과 실제 고깃집 운영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쓴 “술은 독성과 중독성이 마약에 비할 만큼 해로운 물질”이라는 글이 화제다. 물론 글은 이전에 올렸지만, 지난달 말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후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는 8월 말, 심리 상담을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내 안에 4명의 자아가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은 자폐 증상이라고 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마약 중독 증상’이라고 넘겨짚었다. 한 달 만에 추론은 사실이 됐다.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연예인들의 마약 범죄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에 너무 뻔한 거짓말을 보태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상태를 떠벌리면 심각한 범죄는 코미디가 된다. 시민들의 경각심은 점점 허물어져 간다.

그런 코미디가 하나 더 나왔다. 이번엔 경찰이 주연으로 나섰다. 지난 7일 밤 10시 16분, 서초경찰서 강력팀과 여성청소년계 경찰, 소방과 시청 공무원까지 20여명이 관내에서 잘나간다는 T 클럽 앞에 집결했다. 몇 시간 전, 출입기자들에게 동행 취재가 가능하다는 공지를 한 까닭에 취재진도 따라붙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단속은 정확히 오후 10시 30분에 끝났다. 딱 14분 동안 마약은 물론이고 화장실 몰카와 주방 위생, 소방 실태까지 점검했다고 한다. 실적? 당연히 전무했다. 합동 단속반은 다음날 새벽 2시 정도까지 세 곳을 더 뒤졌다. 성과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최근 클럽을 비롯한 유흥업소에서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유흥업소에서 마약을 하다 붙잡히는 경우는 드물다. 대검이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유흥업소에서 검거된 마약 투약자는 전체의 2.3%에 불과했다. 폐쇄적인 구조로 단속반을 피해 도망가거나 마약을 숨기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단속반은 의심사례가 눈앞에 있어도 당사자 동의 없이 검사를 요구할 수 없다는 약점도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경찰이 기자들까지 대동하고 클럽 단속에 나선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윤희근 경찰청장의 취임 일성. 그는 지난 8월 취임 직후 강남권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을 ‘국민체감 전략과제’로 정했다. 10월 말까지 특별단속기간을 정했고, 도중에 연말까지로 기한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특별 단속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경찰은 거의 해마다 마약류 특별 단속을 해왔다. 기한은 2~3개월, 때론 두 달이 추가되기도 한다. 가끔 마약반뿐 아니라 일반 형사 전원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크웹·던지기 등 신종수법 대응책 마련도 단골 메뉴. 윤 청장이 밝힌 계획은 대부분 여기 다 들어 있다. 그래서 경찰에겐 뭔가 새로운 실적이 필요했던 걸까.

마침 그날 오전 이원석 검찰총장이 “마약범죄가 임계점을 넘은 상황”이라며 광역 단위 합동 수사를 천명했다. 그런데 검찰과 경찰 모두 협력수사를 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검찰이 최근 시행령을 통해 마약과 조폭 사건도 직접 수사 대상에 포함하자 경찰이 민감해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과시성 단속은 이쪽은 넘보지 말라는 영역 표시 같은 느낌도 든다.

마약 청정국 지위는 진즉에 잃었고, 최근 10대 마약 공화국이란 오명까지 생긴 마당에 경찰이 총력 단속을 하는 것은 특별하진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코미디 같은 연출을 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마약 연예인의 복귀에 대해 “우린 반대”라고 공식 의견서라도 내보시라. ‘중독될 정도로 맛있다’는 뜻으로 ‘마약’을 붙인 떡볶이·김밥·댄스에 대해 비판 캠페인을 벌여보면 어떨까. 온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것이다.